"상반기 대회 때는 골프백을 안 메려고 했는데 지난 대회에서 부진해 (유나가) 조르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백을 메게 됐어요. "(박유나 선수 아버지 박병도씨)

"좋은 스코어를 내면 골프백이 아무리 무거워도 힘이 납니다. 반대일 경우는 선수도,캐디도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죠."(홍란 선수 아버지 홍춘식씨)

"제주도는 '한라산 브레이크' 때문에 퍼트라인을 살피는 게 힘들어 조언을 일절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린에 올라가니 또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마음이야 같지만 의견 충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안선주 선수 아버지 안병길씨 · 사진)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 우승은 '가족의 합작품'이라는 얘기가 있다. 선수의 노력뿐 아니라 가족의 헌신과 열정이 담겨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캐디 구성만 봐도 가족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엘리시안제주CC에서 17~19일 열리고 있는 '에쓰오일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에서 활약 중인 아버지 캐디는 50여명이다. 김하늘 김보경 안선주 오채아 서보미 김혜윤 윤채영 이일희 박보배 정혜진 등이 아버지 캐디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김보경 선수의 아버지 김경원씨(52)는 최근 오십견으로 오른 어깨가 아프고 통풍 때문에 무릎도 성치 않지만 30㎏에 달하는 골프백을 끄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김씨는 "몸이 안 아프면 (성적이 나빠서)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픈 것보다는 몸이 아픈 게 낫다"며 웃었다. 아버지 캐디는 이처럼 코스 공략법에서부터 그린의 퍼트라인을 봐주기까지 든든한 파트너 겸 후원자로 고된 투어생활을 선수와 함께 헤쳐나간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이보리 이정은 최혜은 박미지 이다솜 김진주 김현명 김소영 등 10여명의 선수는 어머니가 골프백을 끈다. 우지연은 삼촌,김혜정은 언니가 골프백을 맡아 눈길을 끈다. 골프장 캐디를 이용하는 선수는 30명 정도다.

가족 캐디는 경비 절감에도 도움을 준다. 캐디피만 3라운드에 50만원을 웃도는 데다 숙식비 교통비 등을 감안할 경우 웬만한 대회 경비는 200만원을 넘기기 일쑤다. 가족은 또 선수가 받는 압박감을 크게 줄여준다. 홍춘식씨(52)가 딸 홍란에게 강조하는 게 한 가지 있다. '타수는 잃더라도 웃음만은 잃지 말자'는 게 그 것.그는 "실수한 샷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건 불문율"이라며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반전하고 갤러리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라운드가 끝난 뒤 지쳐있는 선수를 연습장으로 이끌고 가는 것도 가족 캐디의 역할이다.

송민지 선수(22 · 청구건설) 어머니 노순단씨(52)는 국내 '어머니 캐디' 1호다. 그녀는 "갤러리보다 캐디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며 "갤러리로 봤을 때는 보기를 하는 게 안타깝고 이해가 가지 않지만,캐디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녀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필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보기를 했을 때 '열 받은' 딸에게 하늘 한번 보고 심호흡하라고 해도 잘 안 듣는다는 것.그래도 노씨는 딸과 함께 필드에 서는 게 즐겁단다. "둘이 사인이 맞아 볼이 홀에 떨어질 때 '스릴'이 있습니다. 경기가 잘 풀리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요. "

한편 18일 열린 대회 2라운드에서 최혜용(19 · LIG)은 합계 8언더파 136타(69 · 67)로 김희정을 2타차로 제치고 단독 선두에 나섰다.

제주=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