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건너지 못하는 강이 있다. 이 강의 한쪽 제방은 경제발전으로,다른 한쪽은 민주화로 가는 길인데 보수,진보 두 진영은 죽더라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수 없는 것처럼 믿고 있는 인식의 강이다. 제방은 흐르는 물길을 위해 있고 우리나라 민생의 젖줄을 지키는 역할이다.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정권 교체까지 경험했지만 한쪽 진영이 붕괴돼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비쳐진다. 저쪽 진영이 무너지면 환성도 잠시,유권자는 당장 그쪽 가치의 젖줄이 메말라서 갈증에 빠지게 되고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려 곧 지지를 바꾸게 된다. 선거 결과,민생에는 민주와 경제 중 어느 것도 없어선 안되는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나라가 이 만큼 잘살게 된 것이 보수 · 진보진영 모두 자기 덕택으로 믿지만 과신이다. 실은 일반국민은 경제개발에 참여해 윤택한 생활을 즐기는 한편 권력에 맞서던 민주투사를 응원하며 돈을 보내고 그들을 정치권에 영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발전시킨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됐다. 국민들이 그때그때 민주와 경제를 적절히 배합한 균형감각 덕택으로 돌려져야 한다.

어느 정도 살 만한 형편이 되고 나서도 태극의 원리를 아는 국민은 한쪽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어제 지지한 정당에도 지지를 철회해왔다. 민심이 변덕스러운 게 아니라 승자에 대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경고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민주화 투쟁으로 일관했던 사람도 경제발전의 열매를 누리고 있으며 경제발전에만 전념했던 사람도 민주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실은 국민을 섬겨야 할 빚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상대 진영이 추구해준 가치에 고마워해야 할 일로 느껴진다. 이것을 몰랐기에 양 진영이 지나치게 극단으로 치달아 두 제방이 너무 벌어져 강이 메마르고 국민은 항상 갈증을 느꼈다. 그것이 또 정치 불신으로 연결된다.

이것을 고칠 때가 왔다. 최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대한 엄청난 조문과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계기라고 본다. 정치권은 분위기에 편승해 '민주화냐? 경제발전이냐?' 택일하라고 이슈화할지 모른다. 국민은 '분열로 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의 시계추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민주와 경제,그리고 다양한 가치를 아우르는 통합으로 가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은,한편으로는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퍼져있는 부조리와 반칙을 없애는 공정한 시스템을 실현하고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를 바라고 있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권에 대한 민주화 과정에서 법질서를 파괴하는 시위문화의 양산,경제현실과 배치되는 이상주의,평등의식과 집단이기주의를 제도 안에서 해결하면서 준법과 시민의식으로 성숙시키고 경제적 비효율성을 없애 나가기를 바란다.

통합,소통과 같은 추상적 목표가 아니라 어떻게 달성하느냐 하는 구체적 방법을 내놓아야 한다. '총론 찬성,각론 반대'는 국민을 식상하게 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이다. 작은 목표달성조차 희생과 양보를 요구한다. 천성산 도롱뇽 보호를 위한 단식으로 공사가 지연돼 수조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환경보호를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국고낭비 또한 심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때로는 경제발전을 위해 양보하고 국민에게 인내하자고 설득해야 하고,보수진영도 민주화를 위해 공정성과 약자 배려에 솔선수범해 신뢰를 얻도록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 안목에서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일자리와 편익이 생겨나고 사회적 상생과 신뢰로 성숙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남해섬에 유자가 유명한데 50년 전에 좋은 유자나무를 심고 가꿔야 손자가 그 덕을 누린다는 실생활에서 변화의 지혜를 얻어야 한다.

심성근 <전략물자관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