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굽 없는 신발'을 개발한 한 중소기업이 특허소송 제도 개선을 이끌어 냈다. 새 증거를 제시하면 대법원에서 승소했더라도 다시 시작된 1심에서 쉽게 뒤집히고 소송이 반복되는 사이 특허 기간이 끝나버리는 특허소송 제도의 허점을 지적,제도를 바꿨다.

특허청은 기능성신발 제조업체 그리폰이 국회를 통해 전달해온 '특허소송 제도 개선에 관한 진정'을 받아들여 지난달부터 특허심판 제도를 변경 운영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새 제도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특허분쟁에 새 증거가 추가될 경우 기존 3인 합의체 대신 5인 합의체에서 심결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상위 법원의 판결을 뒤집기 위해서는 그만큼 신중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심판관 수를 2명 더 늘리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도 변화는 미완결 소송으로 특허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한 신발업체의 노력에서 비롯됐다. 신발 제조업체인 한리산업(그리폰의 전신)은 1992년 뒷굽을 없앤 신발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이 회사는 착용자가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해 걷도록 함으로써 운동효과를 높인 이 신발로 1996년 한국과 일본에서 특허등록을 받았다. 일본 수출로만 1996년 '100만불 수출의탑'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실적을 올렸다. 한리산업은 그러나 다른 주력 사업 실패로 1998년 부도를 맞았다.

회사 대표였던 조명언씨는 2000년 유성호 공동대표와 함께 그리폰이란 회사를 설립하고 뒷굽 없는 신발 등 기능성 신발사업에 다시 뛰어들었다. 하지만 부도 후유증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품 출시가 늦어지는 사이 유사 제품이 우후죽순격으로 시장에 나왔다. 이에 따라 그리폰은 2006년 '파워워킹'을 새로 판매하면서 마찬가지로 뒷굽없는 신발을 제조해 판매하는 국내 H사에 특허침해 중지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올해 초 3년에 걸친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본격적인 재기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에서 H사가 한리산업 출시 전 이미 기능성 신발이 존재했다는 새로운 증거를 추가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특허심판원은 이 증거를 받아들여 그리폰 특허에 대해 무효 심결을 내렸고,그리폰은 상대방의 유사 제품에 대해 판매금지 가처분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폰 측은 "기존에 특허법원과 대법원에 H사가 낸 증거와 차이가 없는 증거"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국회에 진정을 했고 특허심판원이 일부 문제점을 인정해 제도를 개선했다.

그리폰의 유 대표는 제도 개선이 아직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유 대표는 "또다시 3년 동안 소송을 진행하면 특허 기간(2012년)이 만료돼 소송의 의미가 없어진다"며 "작은 증거 하나로 소송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특허권 행사를 막도록 하는 현행 소송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뒷굽 없는 신발은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4000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리폰 매출은 5억원도 되지 않는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