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제통일의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개성공단이 2004년 시범단지 조성 후 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12월 북측의 통행제한조치에 이어 지난 5월 '개성공단 계약무효' 선언으로 인한 '개성리스크'가 불거지면서 국내외 바이어들의 주문 감소로 105개 입주기업들의 경영난이 심화되는 실정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9일 남북 2차 실무자협상이 끝난 직후 본사 회의실에서 유창근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SJ테크 대표),정기섭 에스엔지 대표,강창범 오오엔육육닷컴 대표,조봉현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임동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좌담회를 갖고 현 상황과 해법을 살펴보았다.

―지난 19일 2차 실무협상에서 북측이 통행제한 해제를 시사한 것을 빼면 별다른 진전이 없다. 협상을 평가한다면.

▼유 부회장=현재 개성공단 상황은 교통사고가 난 부상자를 응급실에 실어다 놓고 사고의 원인만 따지는 꼴이다. 치료는 뒷전으로 밀려 환자(입주기업)만 죽게 생겼다. 뭔가 긴급대책을 당장 내놓아야 한다. 물론 협상속도도 높여야 한다.

▼조 연구위원=북측이 통행제한조치를 풀 뜻을 내비친 것은 고무적이지만,북측은 임금과 토지이용료 문제 등에서는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남측이 전향적 자세로 북측 의도에 버금가는 뭔가를 던져줘야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입주기업들의 피해상황은.

▼정 대표=거래선이 떠나면서 주문이 격감하다 보니 대다수 기업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섬유봉제업을 하는 우리 회사의 경우 3월 가동률이 70%였는데 4월 이후 50%선으로 떨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A급 바이어들이 이탈한 뒤 채산성이 맞지 않는 악성주문에 의존한 채 공장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주한 우량 기업들이 개성에 입주했다는 이유만으로 은행이 (대출을) 기피하는 한계기업으로 전락한 실정이다. 개성공단 설비는 담보로 활용도 안 돼 입주기업들은 개인 부동산을 처분하고 사채를 끌어쓰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 쉬쉬하고 있지만 20여개 기업들이 연초부터 은행이자를 계속 연체하고 있어 조만간 줄부도사태를 맞게 될 것이란 소문도 파다하다.

―정부가 중국 베트남 등 제3국의 산업시찰을 제의했다. 이들 국가와 임금 등 경영여건을 비교하면.

▼이 사무국장=단순히 임금문제가 아니라 산업인프라 측면에서 개성이 열악한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통행 제약을 비롯해 원자재 조달 등 제반 생산요소를 감안하면 현행 개성 임금이 중국 베트남에 비해 결코 싼 편이 아니다.

▼정 대표=현재 개성 근로자에게 매월 지불하는 110~120달러 수준의 임금은 중국 내륙지역 수준이며 베트남보다 이미 높다. 반면 생산성은 중국 베트남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언어도 통하고,이직 위험도 없는데 이 같은 생산성 차이에 모두들 의아해하지만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장경제에 익숙하지 않아 응용력과 이해력이 떨어지는 데다 비숙련공들이라 평균 6개월~1년 이상 일해야 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 중국 개성 등 3곳의 봉제공장 생산성을 비교해보면 중국은 한국 생산성의 80~90%까지 올라왔는데 개성은 여전히 30~4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북측 근로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입주기업들이 수용할 수 있는 임금 인상은 어느 수준인가.

▼유 부회장=최저임금 50달러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두 번 올려줬다. 업종에 따라 장려금을 차등지급하는 식으로 이미 많이 올랐다. 솔직히 잘되는 기업 몇몇은 북측 요구대로 300달러까지 올려줘도 된다. 하지만 입주기업 태반은 기존 임금수준으로도 적자를 보고 있다. 개성공단 생산성과 맞물려 원칙을 정해 놓고 단계적으로 임금을 올려야 한다.

▼강 대표=근본적으로 임금에 대한 문제는 기업의 몫으로 넘겨줘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최저임금 결정으로 끝난거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기업의 생산성 등을 감안해 정해져야 한다.

―입주기업들 사이에 '부도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는데.

▼정 대표=지난해 7월 이후 입주한 후발기업 30여개가 위험군이다. 적자폭은 당초 계획보다 현저히 늘었는데 자금줄이 막히면서 근근이 버텨가고 있는 상황이다. 섬유봉제업종에서는 중국 베트남 사업을 정리하고 개성에 올인한 기업이 많다. 개성에서 망하면 모든 사업을 접고 주저앉을 판이다.

―협상의 실마리 어떻게 풀어야 하나.

▼강 대표=개성공단과 관련해 북측이 생떼를 쓰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합의 미이행과 미적지근한 태도도 문제다. 합숙소 건립 과제부터 먼저 풀어야 한다.

▼유 부회장=개성 외곽에서 인력을 충원하다 보니 상당수 근로자는 새벽 3시에 일어난다. 거주지에서 3시간 정도 걸어나와 출근 버스에 탄 뒤 2시간 지나서야 공장에 도착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나. 2004년부터 개성공단 운영 마스터 플랜을 짤 때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합숙소를 짓고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합의된 문제다.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니 상황이 꼬이고 있는 것이다.

▼조 연구위원=만에 하나 공단 폐쇄가 이뤄질 경우 이로 인한 직 · 간접적인 피해는 엄청나다. 직접적인 투자비용이 1조1000억원 정도지만,105개 입주업체와 1만6000여개 연계업체들의 동반 부실,향후 안보 리스크 부각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 이탈 가능성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은 1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1단계 조치로 합숙소 건립 등 합의된 원칙을 지킨 후에 2단계 조치로 임금 인상 등 문제를 현실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정리=손성태/임기훈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