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나 어제 완전 OTL.B=Sup.A=팀장님 질문에 괜히 AC했거든.B=5글5글….DWBH 힘내라!!

얼마전 삼성그룹의 컴퓨터 로그인 초기화면에 뜬 글이다. 계열사의 두 직원이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를 그대로 캡처해 놓은 것.암호 같은 문자가 가득한 글의 맨 밑부분에는 "최상무님 통(通)하셨습니까?"라는 문구도 떠 있었다. 젊은이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OTL은 젊은 세대의 채팅용어로 절망(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의 모습),Sup는 '무슨 일인데?(What's up)',AC는 '아는 척',5글5글은 '(손발이) 오글거린다',DWBH는 '걱정 마(Don't worry,Be happy)를 의미한다.

최근 삼성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넥타이 풀고 근무시간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한 삼성이 요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파격적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과거 임원 중심,상명하달식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대리 · 과장 중심의 쌍방향 구조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큰 변화는 '마이 싱글'이라는 컴퓨터 로그인 화면에서 느낄 수 있다. 25만명의 삼성 직원들은 매일 바뀌는 이 화면을 통해 구준표(이민호),손담비,김범,소녀시대,장근석,간고등어 다이어트 강사 등을 만난다. 웬만한 임원들은 이름도 모르는 연예인,유명인을 접하는 셈이다. 메시지는 '삼성맨 힘내라'는 얘기부터 직장인의 애환,생활에 필요한 상식,삼성의 활동까지 다양하다. 소녀시대의 메시지는 "삼성 오빠 언니들,소녀시대와 함께 파이팅"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매일 초기화면을 만들 때의 원칙은 임원은 이해하지 못해도 대리가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임원에서 대리로 변한 셈이다. 과거 그룹 계열사 광고나 경영 방침에 관한 고리타분한 메시지보다 훨씬 호응도가 높아졌다는 게 젊은 직원들의 평가다.

22일 아침 초기화면은 "모든 것은 변신한다. 사보도 변신한다. 트랜스사보 전격 탄생"이었다. 삼성이 새로운 그룹 사보를 만든다는 것을 영화 '트랜스포머'를 빌려 공지한 것이다. 삼성은 그동안 사내,사외로 나뉘었던 사보를 통합하고 직원은 물론 직원 가족,고객,협력업체로 커뮤니케이션 대상을 넓혀 나가기로 했다.

삼성은 또 최근 인트라넷에 '그룹 블로그'를 만들었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삼성의 한 직원은 "최근 블로그에 자율근무제를 실시하면서 야근수당이 없어진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며 "회사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등 과거에 볼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 계열사에 아침마다 내보내는 그룹방송도 딱딱한 내용보다는 젊은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이 소녀시대와 400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인천공항에서 촬영한 '하하하 캠페인송'은 1000만건이 넘는 클릭수를 기록할 정도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관리 중심이었던 기업문화가 점점 창의력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젊은 직원들의 창의적인 생각이 여과없이 드러나 조직에 활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