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US오픈은 폭우와의 싸움도,난코스와의 싸움도 아니었다. 닷새 동안의 인내심 경쟁이었다. 그리고 최후의 승자는 첫날 첫 홀을 더블 보기로 시작하고도 남은 71홀에서 흔들리지 않은 '무명' 루카스 글로버(30 · 미국)였다.

글로버는 예정보다 하루 늦은 23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파밍데일의 베스페이지골프장 블랙코스(파70)에서 끝난 대회에서 4라운드 합계 4언더파 276타를 기록하며 생애 첫 메이저대회 정상에 올라섰다. 2001년 프로가 된 그는 2005년 후나이클래식에서 미국PGA투어 첫 우승을 차지한 뒤 통산 2승째를 US오픈 우승 트로피로 장식했다.

지난주까지 세계랭킹 71위로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는 우승 덕분에 랭킹 18위로 치솟았다. 어니 엘스(19위) 잭 존슨(21위) 마이크 위어(23위) 레티프 구센(25위) 앙헬 카브레라(28위) 등 내로라하는 메이저 챔피언들을 다 내려다보게 됐다.

예선을 거쳐 대회에 출전한 글로버는 리키 반스(미국)가 1번홀에서 보기를 범하는 바람에 공동 선두로 올라선 뒤 줄곧 리더보드 윗자리를 지켰다. 전반에 보기 3개로 3타를 잃었지만 다른 선수들도 타수를 까먹기는 마찬가지였다.

선두 다툼을 벌인 반스는 5~8번홀에서 4연속 보기로 무너지며 2위권으로 떨어진 데 이어 11,12번홀에서도 연속 보기를 내며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글로버도 15번홀(파4)에서 네 번째 보기를 하며 필 미켈슨,데이비드 듀발(미국)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그러나 글로버는 이날 유일한 버디를 16번홀(파4)에서 잡아내며 17번홀(파3)에서 1타를 잃은 두 선수의 연장 돌입 희망을 뭉개버렸다. 상금 135만달러(약 17억3000만원)를 받은 글로버는 "인내심을 시험한 날이었다. 16번홀 버디가 우승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미켈슨은 13번홀(파5 · 길이 554야드)에서 기막힌 아이언샷에 이어 1.2m 거리의 이글퍼트에 성공하고 공동 선두가 돼 극적 역전승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러나 15번홀에서 90㎝ 거리의 파퍼트를 놓친 데 이어 17번홀에서도 보기를 범하며 고개를 떨궜다. 듀발 역시 17번홀에서 약 1m 거리의 파퍼트가 홀을 돌아 나오는 바람에 우승 경쟁 기회를 놓쳤다.

미켈슨과 듀발은 반스와 함께 2언더파 278타로 2위를 차지했다. "유방암 투병 중인 아내에게 우승컵을 바치겠다"던 미켈슨은 이 대회에서만 통산 다섯 번째 2위를 기록했다. 2위 다섯 번은 역대 최다다.

'디펜딩 챔피언' 타이거 우즈(미국)는 13,14번홀 연속 버디로 선두에 3타 차까지 접근했으나 15번홀 보기로 대회 2연패 목표를 접어야 했다. 대회 내내 퍼트 난조에 시달린 우즈는 이븐파 280타의 공동 6위로 마쳤다. 앤서니 김(24)은 메이저대회 일곱 차례 출전 가운데 두 번째로 좋은 공동 16위에 올랐고,최경주(39 · 이상 나이키골프)는 공동 47위에 머물렀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