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우량 자산만 모아 8~9월께 새로 출범할 '뉴 GM' 회장에 통신업체인 AT&T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에드워드 휘태커가 내정됐다. 그는 2005년 SBC커뮤니케이션스 CEO로 있을 때 AT&T를 인수한 뒤 통합회사를 미 최대 통신업체로 성장시킨 인물이지만 자동차 회사에는 몸 담은 적이 없다.

CDMA(부호분할 다중접속방식) 기술로 유명한 퀄컴은 이달 초 3성 장군 출신의 차영구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를 퀄컴코리아 사장 겸 퀄컴 본사 수석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휴대폰업체 팬택에서 잠깐 상임고문을 맡은 것을 제외하면 기업경영에 참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정보기술(IT) 종합 서비스업체인 한국후지쯔는 지난 15일 김방신 전 현대자동차 중국법인 부대표(상무)를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異)업종 간 CEO 교류가 확산일로다. 미국 등 해외에서 곧잘 이뤄지던 업종 벽을 넘어선 경영진 영입,즉 CEO 컨버전스(융합화)가 국내 기업에서도 빠르게 늘고 있다. 머서코리아,콘페리인터내셔널 등 글로벌 인적자원관리 컨설팅 및 헤드헌팅업체들은 국내에서 이런 추세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경영 리더십이 관건이다

IBM을 구한 루 거스너 전 CEO는 이업종 간 경영진 교류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식품 및 담배업체인 RJR 나비스코 CEO를 지낸 거스너가 1993년 난파 직전의 거대 기업 IBM의 CEO로 지명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IT업종에 대한 전문성이 없었던 그에 대한 세간의 우려와 회의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대적인 수술을 통해 IBM을 회생시켰다. IBM의 부활은 미 기업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반전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거스너 CEO의 성공비결은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기존 IBM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경영을 도입한 데 있다. 그는 한번 고용되면 영원한 IBM맨이라는 종신고용제를 철폐하면서 전체 임직원의 4분의 1을 해고했다. 생산설비도 40% 축소했다.

박형철 머서코리아 대표는 "내부 승진이냐,외부 영입이냐 등 CEO 선임을 둘러싼 많은 연구가 있지만 분명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위기의 시대,변화의 시대엔 리더십이 강조되고 업종 경험과 무관한 CEO들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기술과 시장융합이 경영층 바꾼다

최근 이석채 KT 회장은 마케팅 등 주요 부서의 본부장급 임원을 전혀 다른 업종의 인사들로 물갈이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카드와 신한은행을 거친 금융마케팅 전문가 양현미 전무가 개인고객부문 개인고객전략본부장에,LG생활건강 출신의 송영희 전무가 홈고객부문 홈고객전략본부장에 각각 영입됐다. 포화상태의 통신시장에서 새로운 성장을 이루고 다른 산업과 통신을 연결하는 협력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우물 바깥'을 아는 경영진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한국야쿠르트 역시 LG텔레콤 마케팅전략 임원을 지낸 차지운 전무를 마케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한국야쿠르트가 IT업계에서 임원을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J제일제당도 삼성SDS 출신의 SI(시스템통합) 전문가인 이상몽 상무를 영입,스피드경영 추진팀을 이끌도록 했다.

채은주 콘페리 부사장은 "마케팅 파트의 경우 통신 금융 등 소비자 밀착형 업종 경력자들을 찾는 수요가 많다"고 전했다.

◆CEO 영입,무엇을 고려할 것인가

유능한 CEO를 찾는 수요가 많아지면 CEO 시장은 커지고 업종 간 교류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영진을 선임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LG경제연구원은 △돌다리도 두들기 듯 철저히 검증하고 △회사 가치와 문화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며 △어떤 경우라도 섣부른 기대나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먼저 헤드헌팅업체 등을 활용한 평판 조회를 통해 자질과 실력,경험이 과장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기업의 문화 및 가치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HP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중도하차한 '철의 여인' 칼리 피오리나가 대표적이다.

피오리나의 지나치게 독단적인 경영 스타일이 상호 배려 및 민주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HP 문화와 마찰을 빚으면서 회사 구성원과 이사회의 반감을 샀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신임 CEO가 모든 것을,금방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단기 성과 위주의 경영을 가져와 결국 실패로 끝날 위험이 크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