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멋을 좀 낸다는 젊은 여성들 어깨에 명품 가죽가방 대신 누런 색의 면가방이 걸리기 시작했다. 친환경을 표방해 만든 '에코 백(Eco Bag)'이다. 밋밋한 모양에 별 장식이 없어 장바구니로 쓰기에 딱 좋은 제품이지만 패션 아이템으로 단연 인기라고 한다. 한 백화점은 에코 백 디자인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자전거에도 패션바람이 불고 있다. 옷에서부터 운동화 헬멧 고글 장갑까지 일습을 갖추고 깔끔하게 손질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기호나 취미가 패션과 결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면 마 등 천연재료로 만든 옷이나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화장품이 잘 팔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4일 서울 압구정동에선 'Love Eco(환경사랑)' 패션쇼까지 열린다고 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멋쟁이,이른바 '에코 보보스(Eco Bobos)'가 부쩍 늘어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에코 보보스는 환경을 뜻하는 '에코'와 '보보스(부르주아의 부에 보헤미안의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의 합성어다. 이들은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한다. 유기농 식품을 사 먹고 재활용 화장지를 쓰는 건 기본이다. 옷이나 화장품도 환경에 해를 주지 않는 제품을 사용하려 노력한다. 환경보호단체에 기부를 하지만 환경투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것도 특징의 하나다. 간섭하기도,간섭받기도 싫어하는 탓이다.

이들 에코 보보스가 불황기에 주요 소비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올 1월~6월18일 팔린 친환경 상품이 작년에 비해 분야별로 20~90%나 늘어났다는 조사결과를 봐도 그렇다. 롯데백화점 본점 친환경 식품매장의 1~5월 이용객도 1만6204명으로 작년 보다 17.8% 늘었고 구매금액도 18.4% 증가했단다. 다른 분야 매출 증가세가 주춤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에코 보보스가 이처럼 사회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칫 친환경으로 포장된 사치와 과시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500달러짜리 에코백이나 '페라리''벤츠''BMW'등 유명 브랜드를 단 '명품 자전거'까지 등장했다니 하는 얘기다. 진짜 친환경은 자연은 물론 이웃의 삶까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때 얻어지는 게 아닐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