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대법원의 첫 존엄사 허용 판결 이후 한 달 이상 경과한 23일 첫 존엄사가 시도됐지만 한국 사회에 존엄사가 정착되기까지는 좀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치료를 받아온 김모 할머니에 대한 존엄사 시행은 그야말로 시작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선 존엄사 시행과 관련된 지침과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국내 주요 병원 중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한 지침을 마련한 곳은 세브란스병원(3단계 존엄사 가이드라인)과 서울대병원(말기 암환자의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 등 두 곳뿐이다. 두 병원의 지침도 서로 다르고 어느 쪽이 더 적절한지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에는 총 5명의 말기암환자가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제출한 상태이며 병원 측은 말기암 외에 다른 질환에도 확대 적용할지 고심 중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등 의료계 대표단체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각 병원과 의료진에게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최근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다. TFT 위원장을 맡은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윤리학)는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고 그것에 맞는 지침서를 마련할 예정"이라며 "이르면 오는 8월께 초안을 만들고 이후 좀더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존엄사 허용은 생명 경시를 불러올 수 있고 하나의 대법원 판례를 일반화,입법화하는 데에는 생사에 대한 가치관을 놓고 좀더 토론할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