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 < 서강대 교수ㆍ경영학 >

'철밥통''신의 직장' 공기업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한마디로 일하기 편하고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이 공기업이란 뜻이다. 이런 공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고 부러워한다. 외환위기 이후에 민간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심화되면서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공기업은 청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일터로 꼽힌다. 고위관료나 정치인들도 현직에서 물러나면 공기업 경영자로 옮겨가 경력을 마감하길 원한다.

공기업이 매력적인 직장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기업에 유능한 인재가 신입사원이나 경영자로 유입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단지 일신상의 안위와 평안만을 위해 공기업을 선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공기업이 사기업보다 일하기 쉽고 편하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공기업의 경영은 사기업보다 제약조건이 많아 훨씬 어렵고 힘들다. 공기업의 사업은 민간에서 수행하기에는 투자비용이 높고 수익성이 낮은 공공서비스에 해당한다. 가격에 대한 통제력이 미흡해 비용이 상승해도 가격에 전가시키기가 어렵다. 또 다양한 정책목표와 정책수립자로부터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외부 집단의 욕구와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

제약조건이 많고 까다로워 선택의 폭이 제한되면서 성과수준에 대한 기대는 높은 공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경영능력과 지속적인 혁신을 필요로 한다. 민간기업에서도 기반이 열악하고 자원이 빈약한 상황에 처할수록 혁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공기업도 비용절감,인원감축,고용창출,투자증대,민영화 등과 같이 다양한 과업을 제한된 자원으로 해결하려면 당연히 혁신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공기업의 경영혁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혁신이 정착되고 성과로 연결된 사례는 많지 않다. 공기업에 혁신이 체질화되지 못한 건 바로 혁신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혁신성과가 우수하더라도 그것이 인정되고 보상받을 길이 없어서이다.

시장을 독점해 경쟁이 없는 공기업이 혁신을 추구해 성과를 향상하도록 유도하려면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공기업간의 상호경쟁을 촉발하고 경영성과를 보상으로 연계시키고자 경영평가제도를 1984년부터 실시해 왔다. 원래의 취지는 평가결과를 통해 공기업 경영자의 성과가 부진하면 퇴출시키고 우수하면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영평가를 이유로 퇴출된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올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영평가에서 실적이 나쁘게 판정된 4곳의 기관장이 해임건의를, 부진한 17명은 경고를 받았다. 이와 같은 결과를 놓고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금까지 기관장 평가를 통해 해임건의 조치가 나온 경우는 드물어 이번 조치가 파격적이라는 의견에서부터 해임조치의 폭과 대상이 미흡하다는 입장까지 다양하다. 이번 조치가 공기업 개혁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에 못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경영자를 자극하고 긴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공기업의 혁신과 선진화를 촉진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회간접자본과 하부구조를 선진국 수준 못지않게 발전시킨 데에는 공기업의 역할이 크다. 수많은 공기업의 경영자와 직원들이 사명감으로 노력하며 헌신해온 공로는 절대 부정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철밥통'이라는 오명에 매도되어온 공기업 경영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길은 엄정하고 철저하게 경영평가를 실시하는 것이라 믿는다. 공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는 이유로 많은 인재들이 취업을 원하는 진정한 '신의 직장'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