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씨(50)의 소설집 《장미나무 식기장》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수퉁스런 장미나무 식기장을 닮았다. 고풍스럽고 아름답지만 어딘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여자들,그러나 장미목으로 만든 가구가 비싸듯 이 여자들이 내뿜는 기운은 값지다.

<추풍령>에 등장하는 '나'의 집안에는 과부들로 대를 이어온 내력이 얽혀 있다. 이들이 살아남자면 남녀 간 내외 등 엄격한 법도를 지켜야 하는 법.그런데 '나'의 어머니는 멋대로 세상을 떠돌다 몇 달 간격으로 거지꼴을 한 채 돌아온다. '이 빠진 사기종발 내돌리듯' 나다니던 어머니가 오면 집안에서는 감자탕을 만들어 집집마다 돌린다. 그런데 이 감자탕의 효능이 과부 집안에서 끓였다고 하기엔 망측하다. 힘 좋은 남자와 한바탕 정사라도 치른 양 노골노골해지는 효험이 있는 감자탕의 발칙함이 '나'의 어머니를 자꾸 바깥으로 내돌린 걸까.

<남은 해도 되지만 내가 하면 안 되는 것들의 목록>의 은영은 여덟살 연하 애인의 집에 인사하러 간다. 예비 시어머니를 만나고 나서야 은영은 결혼 후 민속자료로 지정된 기와집에서 종부 노릇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종부로 폼 잡는 덴 단 10분이요,그 10분의 폼을 위해 평생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산다는 걸 알고 있는 은영은 '그게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면 보기 좋다고 말하겠지.하지만 보기 좋으라고 인생을 사는 건 아니잖냐'라며 애인에게 작별을 고한다. "꽃은 말이지… 나무째 봐야지 꺾으면 사흘도 못 가…"란 말처럼,아름답게 꽃병에 꽂혀 있는 신세보다는 좀 투박하더라도 나무 위에 피어나는 쪽이 낫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