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변호사들의 기획소송 표적이 되고 있다. 변호사들은 과거 한전이 송전선을 설치하면서 송전선이 지나는 땅의 공중공간에 대해 보상하지 않은 점을 겨냥,땅주인들을 부추겨 줄소송을 벌이고 있다.

소송에선 대부분 땅주인들이 이기고 있어 한전은 그동안 8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물어줬다.

소송은 2030년까지 지속될 예정이어서 손해배상 규모도 수천억원대에 달할 전망이다. 그러나 한전의 배상액이 고스란히 전기 요금에 반영되는 구조여서 일반 시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관련법 개정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기획소송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송전선이 지나는 땅을 소유한 지주 100여명씩이 매달 한전을 상대로 손실배상청구 소송을 내고 있다. 이는 1980년대 중반 대법원이 한전에 송전선이 지나는 땅의 소유주에게도 지상권을 무단 이용한 데 따른 사용료 즉 부당이득을 돌려주라고 판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판결 이후 변호사들은 송전선이 지나는 전국 곳곳의 땅 주인들을 찾아내 소송을 유도하고 있다. 손실배상 소송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한전 관계자는 "토지 소유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면서 소송이 늘어나는 것 같다"며 "소송을 권유하는 변호사들의 전화가 계속 온다는 땅주인들의 민원이 잇따르는 점에 비춰 기획소송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전선 소송'은 고정 수입

송전선 무단이용료 반환 소송이 전문인 한 변호사는 지난해 9월부터 매달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100명씩 묶어 소송을 내고 있다. 그는 그동안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 착수금 없이 성공보수(손해배상금의 30%)만 받는 조건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땅주인 입장에선 손해볼 게 없어 쉽게 소송에 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들은 전국을 돌며 송전선이 지나는 땅의 등기부 등본을 뗀 뒤 토지 주인에게 소송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송전선 부당이득 반환소송은 대부분 승소하고 있어 변호사들의 고정수입 수단이 되고 있다. 변호사들은 80~100명의 원고를 모아 1억~1억5000만원의 보상금을 청구하기 때문에 수임료가 건당 3000만~5000만원 생긴다.

◆한전의 딜레마

한전은 그동안 465건의 소송에 걸려 773억원을 배상했다. 손실배상액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계류 중인 소송은 84건(소송액 106억원)에 달한다.

한전은 2004년부터 매년 예산을 책정해 2030년까지 우선 순위를 정해 토지소유주들에게 공중공간에 대한 영구사용료를 보상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소요예산과 인력 등을 감안해 2030년까지 장기 보상계획을 수립했다"며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해당 토지소유주에게는 영구사용료를 보상해주고 대신 해당 토지에 대한 구분지상권을 등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국민을 위해 송전선을 설치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라면 사용료를 돌려주는 게 당연하지만 공중의 이익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배상 재원이 전기요금이어서 기획소송이 계속 늘어나면 국민 부담도 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