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소득세 · 법인세 인하 유보를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소득세 · 법인세 인하는 이명박 정부가 '감세(減稅)'를 통한 경제 회복을 위해 지난해 8월 발표한 세제 개편 방향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그런 만큼 이를 뒤엎는 것은 현 정부의 세제 운용 방침을 감세에서 증세(增稅)로 바꾸는 신호탄일 수 있다.

이날 재정위에서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윤 장관에게 "정부의 법인세 및 소득세 감세 계획 중 내년에 하기로 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행을 유보하는 것이 재정을 충실히 하는 측면이나 '부자 감세'라는 일부 주장을 방어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며 "내년에 시행해야 할 소득세 · 법인세 인하에 대해 유보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은 "제안한 내용은 상당부분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내년 이후 중장기 재정 운용 방향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며 올 여름이 끝날 무렵에 이 부분에 대한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윤 장관의 발언만 보면 사실상 세제 당국인 재정부가 법인세 · 소득세 인하 유보 검토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재정부는 윤 장관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해명 자료를 내고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비과세 · 감면 축소를 포함한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데 대한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법인세율(최고구간)은 현행 25%에서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20%로,소득세율은 구간별로 8~35%이던 것이 6~23%로 낮아지게 된다.

윤 장관도 이날 발언에 대해 "지나치게 확대 해석된 것 같다"고 진화했다. 오후 늦게 김광림 한나라당 의원이 "법인세 · 소득세 인하 유보 발언이 언론에 그대로 보도됐는데 진의가 뭐냐"고 묻자 윤 장관은 "모든 부분에 대한 검토가 열려 있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한 것인데 지나치게 확대 해석된 것"이라며 "신중하게 발언을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윤 장관은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위원회 초청 만찬 강연에서도 "부족한 세입을 보완하기 위해 모든 세제 검토가 불가피하다는 말이 잘못 전달됐다"며 "감세정책기조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인세 · 소득세 인하 유보는 현 정부 세제 개편의 근간을 뒤엎을 정도로 중대한 이슈인 만큼 윤 장관이 국회답변에서분명하게 "노(No)"라고 하지 않고 모호하게 발언한 것은 뭔가 다른 속뜻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발등의 불'로 떨어진 재정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증세 방안을 고민하던 차에 은연중 속내를 내비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이미 "더 이상 추가 감세는 없다"는 공식적 입장을 밝힌 만큼 증세로 본격 돌아서기 전에 여론을 떠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사실 감세와 증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정부로선 현실적으로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지만 이는 정부의 확장적 정책기조를 바꿔야 하는 탓에 섣불리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조심스럽게 부분적인 증세 방안들을 비공식적으로 조심씩 언론에 흘려 왔다. 고소득자와 대기업 대상 비과세 · 감면 축소,저효율 에너지 가전제품과 술 담배 같은 품목에 대한 개별소비세 부활,금융회사의 이자소득에 대한 법인세 원천징수 부활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부분적이긴 하지만 '사실상'의 증세 작업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종태/차기현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