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결혼 이민여성 40명 '눈물의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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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중앙회ㆍ행안부, 베트남 등 3개국 친정부모 80명 초청
29일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 A게이트 앞.아이를 안거나 손을 잡은 40여명의 결혼 여성 이민자들과 남편들이 초조한 듯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문이 열릴 때마다 누군가를 절실하게 찾는 표정으로 한꺼번에 시선을 돌렸다. 8시 무렵 인파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메에(엄마)." "짜(아빠)." 결혼 여성 이민자들의 눈가에는 금세 물기가 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모와 딸들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날 인천공항에선 새마을운동중앙회와 행정안전부 후원으로 동남아 출신 결혼 여성 이민자들과 친정 부모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결혼 여성 이민자들은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객지 생활의 설움이 치솟았는지 아빠 엄마만 부르며 눈물을 쏟아냈다.
결혼 후 4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를 만난다는 베트남 출신 팜흥 로안씨(24)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는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아 너무 힘들었다"며 "아이들을 키우며 시집살이를 하다 보니 부모님이 많이 그리웠다"고 눈물을 찍어냈다. 로안씨의 친정 어머니 또티둥씨(54)는 "딸을 먼 나라로 시집보내고 하루도 편히 잔 적이 없다"며 "5시간 이상 걸리는 비행 중에도 딸을 본다는 마음에 피곤한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녀는 "손녀를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많이 컸다"며 처음 보는 손녀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결혼 여성 이민자도 친정 부모를 만났다. 2000년 결혼하면서 태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김혜연씨(35 · 태국명 암노에)는 결혼 2년 만에 남편을 사고로 잃고 7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두 딸과 함께 지내려고 2년 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그녀는 "남편도 없이 시댁에서 생활하다 보니 지난 10년 동안 친정 부모님을 세 번밖에 뵙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김씨는 타국 생활의 설움을 하소연하려는 듯 어머니 소 마하몽씨(66)를 부여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친정 부모를 만난 결혼 여성 이민자와 가족들은 인천공항 인근 한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울 관광에 나서면서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이들은 63빌딩 씨월드에서 열대어와 파충류 등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했다. 오랜만에 본 손자들이 닥터피시 체험관에서 서로 손가락을 넣어보겠다고 덤비자 넌지시 "조심하라"는 손짓을 보내기도 했다. 전망대에 올라서는 서울의 고층빌딩과 아파트 숲을 바라보며 놀라기도 했다.
오후에는 경복궁에 들렀다.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결혼 여성 이민자 친정 부모들은 고궁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딸의 나라'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수문장 교대식 때는 한국 사위들도 신기해 하며 먼길을 날아온 장인 장모들과 함께 어울렸다. 2006년 말 베트남 처녀 보티꾸엔씨(27)와 결혼한 박용길씨(41)는 "그동안 제대로 뵌 적이 없어 다소 어색함이 있었는데 이렇게 같이 어울리다 보니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며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계시는 동안 최선을 다해 모시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후 세시께 경복궁 관람을 마치고 서울 용산 이태원 캐피탈 호텔로 옮겨 새마을운동중앙회가 마련한 만찬을 가졌다. 결혼 여성 이민자 친정 부모들은 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민속촌 등을 둘러보고 2일부터 5일까지는 사돈댁과 사위집을 찾아 딸의 한국 생활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된다.
이번 행사에는 베트남 44명(22가정),필리핀 20명(10가정),태국 16명(8가정) 등 3개국 80명의 결혼 여성 이민자 부모들이 초청됐다.
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