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이 '팝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는 단 한 장면으로 충분했다. 1983년 3월 흑인음악 레이블 '모타운' 탄생 25주년 축하공연 때였다. 잭슨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빌리 진'을 부르다가 돌연 발바닥을 붙이고 미끄러지듯 뒷걸음질치는 '문워크'춤을 선보였다. 인류의 달 착륙을 목격한 것 같은 충격이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시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팝의 역사가 새로 쓰여진 그날 이후 전 세계인들은 '황제의 포로'가 됐다. 토종가수들이 주름잡는 이 땅의 가요계도 1980년대 말까지는 황제의 천하였다. '빌리 진'을 담은 앨범 '스릴러'는 단일 음반 사상 최다 기록인 1억400만장이나 팔렸다.

잭슨이 비록 투자 실패와 사치스런 생활로 5억달러의 빚을 남긴 채 숨졌지만 유족들이 이 빚을 청산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추모 열기로 음반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데다 미공개 곡을 수록한 앨범도 연말께 출시될 예정이다. 마이클 잭슨이란 브랜드 가치는 사후에도 전혀 퇴색되지 않고 있다.

'팝 황제'의 천재성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렵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그의 태도와 열정은 모든 후배들에게 귀감으로 남아 있다. 불황의 긴 터널에 갇혀 있는 우리 가요계엔 더더욱 그렇다. 연간 1~10위 앨범 판매 총계가 2001년 800만장에서 2007년 100만장으로 급감한 이유를 그저 '불법복제'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우리 가요계가 부활하려면 잭슨의 음악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잭슨이 '팝의 전설'이 된 것은 의상 한 벌,드럼 한 음까지 신경써 완벽한 노래와 춤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잭슨파이브'에서 솔로로 전향한 이후 30년간 단 5장의 앨범을 냈지만 그는 황제가 됐고,그의 노래들은 불멸이 됐다. 앨범 한장을 제작하는 데 3~4년씩 '올인'한 결과다. 춤만 잘 추고 노래는 함량미달인 가수들로 넘쳐나는 우리 가요계도 음악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

한마디로 현재 가요계를 휩쓰는 천편일률적인 댄스뮤직과 '후크송'들은 대중의 강렬한 소유욕을 불러오지 못한다는 진단이다. 인기 곡들은 이제 한번 쓰고 버리는 소비재가 됐다. 음악성이 떨어지고,상업성만 비대해진 탓이다. 인터넷 동영상과 휴대폰 벨소리 등 새 미디어환경에서 한 소절의 인기로 먹고 살기 위해 어린 가수들이 재능을 숙성시킬 겨를도 없이 비슷한 노래들을 반복 · 재생산하는 데 투입된 결과다. '빅뱅''원더걸스''소녀시대'가 댄스곡들로 팬들을 흡입하자 이들을 모방한 아류 그룹들이 양산되고 있다. 몇 년 전 SG워너비가 '우우'하는 '소몰이창법'으로 떴을 때도 먼데이키즈와 KCM 등 발라드 가수들이 그대로 따라했다.

아류곡들이 범람하면서 원곡마저 쉽게 질려버리는 데 문제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곡들은 한 해만 지나도 촌스럽게 느껴진다. 한때 광풍을 몰고왔던 '텔미댄스'는 1년여 만에 잊혀져 가고 있다. SG워너비의 멤버가 바뀌었지만 새 얼굴이 누구인지 모른다. 가수들이 개성을 상실했다는 방증이다. 최근 광고 음악이 정상에 오르고,'장기하와 얼굴들'과 '아웃사이더' 등 인디밴드에 대해 관심이 뜨거운 이유도 주류음악에 대해 팬들이 염증을 느낀 때문이다. 그러나 인디밴드들이 주류 가수들을 대체할 수는 없다. 팬들은 정말 새로운 음악을 고대한다. 잭슨의 음악이 우리 가요계에 남긴 의미를 곱씹어볼 때다.

유재혁 문화부 차장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