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 시장의 권력 기반이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경제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대형 금융회사 간 양극화 트렌드가 확고하게 굳어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 보도했다. 지난해 가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국제 금융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지 9개월여 만에 시장의 세력 판도가 완전히 새로 짜졌다는 것이다.

시장 판도 변화의 큰 흐름은 과거 15개 업체 간 춘추전국 시대가 신흥 6강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금융위기의 승자인 6대 강호는 JP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바클레이즈 도이체방크 크레디트스위스 등이다. 이들은 최근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상품 및 외환거래에서 지난해 가을 금융위기 발생 전보다 2배에서 8배 가까운 수익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패자는 미국의 씨티그룹과 메릴린치,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스위스의 UBS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과다한 부실채권으로 금융위기로 인한 타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면서 입지를 빠르게 잃고 있다. 한 투자은행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 시장은 현재 6대 금융사 간 싸움으로 좁혀진 상태"라며 "이는 지난 20년간 결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새로운 강자들이 약자로 전락한 대형 은행들을 밀어내면서 영국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시장부터 미 국채 발행 시장까지 돈되는 사업을 독식하는 추세도 늘고 있다. 실제 벨기에 포르티스와 씨티그룹,RBS 등 경제위기로 휘청거린 은행들은 HSBC와 도이체방크 BNP파리바 스탠다드차타드 등의 공세에 밀려 국제 금융 시장에서 영향력을 적지 않게 상실하고 있다. 영국 모기지 시장도 글로벌 경제위기 전 165개 은행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상황에서 바클레이즈와 로이드 HSBC 등 6~7개 금융사가 과점하는 형태로 변했다.

경영 실적 외에 정치적 요인도 은행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쳤다. UBS가 고객 비밀주의를 포기하면서 신뢰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고 이는 예금자산 감소로 이어졌다. 헤지펀드 사업부문의 성과도 주요 은행 간 실적의 명암을 갈랐다.

이 같은 글로벌 금융업계의 지각변동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군의 대형 은행들에 길을 터주기 위해 경쟁에서 밀린 일부 거인 은행들이 물러나는 형국"으로 분석했다. 키언 아부호세인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은행 고객들이 원하는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다"며 "바로 더 좋고,더 큰 은행을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