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고 대란'] 농협, 계약해지 통보‥비정규직 노조 "3000여명 부당해고"
"귀하와의 채용 계약기간이 만료됐으니 1일부터는 출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서울 모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보조원 A씨는 지난달 30일 밤 인사팀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연락을 받았다. 5년 넘게 근무하며 '내 회사려니'하던 생각과 '정규직으로 전환될지 모른다'는 희망이 산산조각 난 순간이었다. 이 병원은 A씨를 비롯한 6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이 본격 시행된 1일 전국 곳곳에서 해고(계약해지) 사태가 속출하고 그에 따른 노사 충돌 양상이 벌어지는 등 '비정규직 해고 대란'이 본격화됐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날 경기도 성남 A유통업체는 기간제 근로자 10명을 해고했다. 매년 6개월 단위로 최대 2년여간 근무를 해오던 판매직 사원들이었지만 이날 짐을 싸야 했다. 이 업체는 나머지 비정규직 244명도 사용기한 2년이 되면 순차적으로 내보낼 방침이다. 올해에만 60명이 대상이 된다. 경기도 이천의 B리조트도 같은 날 비정규직 10명을 해고했다. 그동안 매번 재계약해온 직원들이다. 리조트 측은 "계속 근무시키려고 했지만 법 개정이 안돼 해고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수원의 한 연구기관도 채용된 지 2년된 비정규직 연구 보조원 4명을 해고했고,충남 아산의 모 대학도 같은 날 비정규직 4명을 내보내는 등 비정규직 해고가 전국 곳곳에서 잇달았다.

비정규직 해고는 노사 간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농협중앙회에선 비정규직 5500여명 중 2년 이상 장기근무한 3000여명의 처리를 놓고 다툼이 생겼다. 농협중앙회는 지난달 4일 '비정규직 인력운용 관련 알림' 공문을 통해 '비정규직 고용기간은 2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명시했다. 또 종전의 5년 고용연한제와 비정규직법의 2년 중 먼저 도래하는 계약기간 종료시점에 비정규직을 해고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각 근로자에게 이를 통보한 상태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 측은 '법 시행 후 근로계약이 체결 · 갱신되거나 기존의 근로계약 기간을 연장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는 비정규직법 부칙 2항을 적용하면 2007년 7월1일에 근로계약서를 모두 갱신했기 때문에 2년 이상 근무한 것으로 보아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농협중앙회 중앙본부 앞에서 투쟁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며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KBS는 지난달 말 해고된 비정규직들이 출근 투쟁과 선전전을 벌이며 사측과 대치하고 있다. 이들은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해고가 이뤄졌기 때문에 부당해고"라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비정규직 해고로 업무 공백이 우려되는 일부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고용유지를 조건으로 비정규직 직원들과 변칙적 구두 협상을 벌이는 상황도 벌어졌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회사마다 개별 고용자와 협상 내용이 제각각이지만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지 않고,향후 지방노동위원회 등에 제소해 재고용을 문제삼지 않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재계는 이날 성명을 일제히 발표하고 비정규직 사태 해결을 주문했다. 전경련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리게 된 만큼 정치권이 하루 빨리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경봉/손성태/이태명/임기훈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