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모든 경제는 1%의 현금과 99%의 빚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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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현실에 말을 걸다 이면희 지음/ 교보문고/ 296쪽/ 1만3000원
'정책당국이 통화량을 늘리는데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금융회사가 어려워진 자신들의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자금을 풀지 않는다. 둘째,위험이 커져 과거 대출을 잘 받던 기업의 대출마저 까다로워진다. 셋째,개인이나 기업은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여긴다. 넷째,불안감 때문에 모두들 부채를 상환하려 한다. 이렇게 되면 돈을 풀어도 문제,흡수해도 문제다. '
《경제학,현실에 말을 걸다》에 나오는 '유동성 함정'에 대한 설명이다. 얽히고 설킨 경제 현상도 원리를 알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옥션 공동 창립자이자 한터투자경영연구소 대표를 지낸 저자는 이 책에서 '복잡계'라는 렌즈를 통해 경제학의 근본 원리를 설명한 뒤 이를 아우르는 '통섭의 경제학'을 제시한다. 실물경제의 수요 · 공급 · 시장을 비롯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금융위기의 이면,애덤 스미스와 폴 크루그먼의 주장까지 수많은 이론을 현실에 대비시키며 경제의 작동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몇 년 전 《명품 경영학》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경제학이 우리 생활 속에 촘촘히 엮여 있다는 것을 줄곧 일깨운다. 사실 일반인이 거창한 거시담론이나 미시이론을 다 공부할 수는 없다. 경제기사를 읽거나 은행에서 대출상담을 할 때,거래처 사람들과 소주 한잔 하며 세상사를 얘기할 때 말문 막히지 않을 만큼의 경제지식만 갖춰도 '짱'이다.
그가 일자리를 설명하면서 예로 든 '인구 100명의 마을'이 재미있다. 인구 100명의 세계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73명이다. 실제 일을 찾아 나서는 인구는 50명이고 23명은 공부하면서 취업을 준비 중이거나 쉬는 사람이다. 50명 가운데 비즈니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47명이고 3명은 실업자.이 3명을 우리에게 익숙한 실업률로 표현하면 6%다.
이 마을에는 3개의 기업이 있고 마을 사람 40명이 그곳에서 일한다. 기업을 소유한 3명은 기업가이고 나머지는 월급쟁이다. 4명은 자영업자.그런데 40명 중 절반이 안 되는 사람만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으며 그 외는 비정규직이거나 임시직,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이는 그나마 잘 사는 9개 국가의 2008년 평균 통계다.
또 다른 예를 보자.100명이 사는 마을에 100억원이 있다. 이 마을에서 거래되는 물건은 100억개인데 가격은 1원씩이다. 이때 정부가 통화 100억원을 추가로 발행한다면,합리적인 구매자는 재빨리 1원에 물건을 사려고 하고 판매자는 가격을 2원으로 올릴 것이다. 통화론자는 이처럼 '합리적인 셈'에 주목한다. 그러나 돈이 늘어나면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에 소비를 늘릴 것이고,이에 따라 생산도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그는 또 역사 속의 경제위기는 늘 '부채' 때문에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1929년 대공황의 시발점은 마진론이었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들이 자본시장의 개방과 맞물려 경쟁적으로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오면서 시작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역시 조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돈을 빌려주면서 주택을 구입하도록 했기에 터진 사건이다. "
그래서 "경제가 1%의 현금과 99%의 빚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표현이나 "백설공주와 못된 왕비,일곱 난쟁이가 사는 세상"이라는 묘사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경제 시스템은 우리 인간처럼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그러므로 늘 있을 수 있는 변수와 오류를 감안하면서 냉정한 시각으로 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더 나은 시스템을 찾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경제학,현실에 말을 걸다》에 나오는 '유동성 함정'에 대한 설명이다. 얽히고 설킨 경제 현상도 원리를 알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옥션 공동 창립자이자 한터투자경영연구소 대표를 지낸 저자는 이 책에서 '복잡계'라는 렌즈를 통해 경제학의 근본 원리를 설명한 뒤 이를 아우르는 '통섭의 경제학'을 제시한다. 실물경제의 수요 · 공급 · 시장을 비롯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금융위기의 이면,애덤 스미스와 폴 크루그먼의 주장까지 수많은 이론을 현실에 대비시키며 경제의 작동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몇 년 전 《명품 경영학》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경제학이 우리 생활 속에 촘촘히 엮여 있다는 것을 줄곧 일깨운다. 사실 일반인이 거창한 거시담론이나 미시이론을 다 공부할 수는 없다. 경제기사를 읽거나 은행에서 대출상담을 할 때,거래처 사람들과 소주 한잔 하며 세상사를 얘기할 때 말문 막히지 않을 만큼의 경제지식만 갖춰도 '짱'이다.
그가 일자리를 설명하면서 예로 든 '인구 100명의 마을'이 재미있다. 인구 100명의 세계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73명이다. 실제 일을 찾아 나서는 인구는 50명이고 23명은 공부하면서 취업을 준비 중이거나 쉬는 사람이다. 50명 가운데 비즈니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47명이고 3명은 실업자.이 3명을 우리에게 익숙한 실업률로 표현하면 6%다.
이 마을에는 3개의 기업이 있고 마을 사람 40명이 그곳에서 일한다. 기업을 소유한 3명은 기업가이고 나머지는 월급쟁이다. 4명은 자영업자.그런데 40명 중 절반이 안 되는 사람만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으며 그 외는 비정규직이거나 임시직,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이는 그나마 잘 사는 9개 국가의 2008년 평균 통계다.
또 다른 예를 보자.100명이 사는 마을에 100억원이 있다. 이 마을에서 거래되는 물건은 100억개인데 가격은 1원씩이다. 이때 정부가 통화 100억원을 추가로 발행한다면,합리적인 구매자는 재빨리 1원에 물건을 사려고 하고 판매자는 가격을 2원으로 올릴 것이다. 통화론자는 이처럼 '합리적인 셈'에 주목한다. 그러나 돈이 늘어나면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에 소비를 늘릴 것이고,이에 따라 생산도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그는 또 역사 속의 경제위기는 늘 '부채' 때문에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1929년 대공황의 시발점은 마진론이었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들이 자본시장의 개방과 맞물려 경쟁적으로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오면서 시작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역시 조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돈을 빌려주면서 주택을 구입하도록 했기에 터진 사건이다. "
그래서 "경제가 1%의 현금과 99%의 빚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표현이나 "백설공주와 못된 왕비,일곱 난쟁이가 사는 세상"이라는 묘사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경제 시스템은 우리 인간처럼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그러므로 늘 있을 수 있는 변수와 오류를 감안하면서 냉정한 시각으로 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더 나은 시스템을 찾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