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의 와인이 있는 서재] (18) 프랑스 와인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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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성을 무너뜨린 캘리포니아 와인‥'파리의 심판'은 공정했을까
1976년 5월24일 오후 3시,프랑스 파리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비교평가 시음회가 열렸다. 주관자는 파리에서 와인숍을 운영하는 영국인 스티븐 수프리에였고 심판관은 모두 프랑스인으로 원산지인증위원회의 감독책임자,'로마네 콩티'의 공동 소유주,와인잡지 편집자,유명 식당의 요리사 및 소믈리에 등 9명으로 구성됐다. 화이트와인으로는 샤르도네,레드와인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와인이 순차적으로 평가됐다.
최종 결과로 레드와인에서 캘리포니아 '스택스 리프 와인 셀러' 와인이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2~4등은 모두 보르도산이 차지해 그나마 체면 유지는 했다. 그러나 화이트와인에서는 캘리포니아산 '샤토 몬트레나'가 부르고뉴의 명품들을 제치고 최고 와인으로 선정됐고,다른 캘리포니아 와인들도 3,4번째로 많은 점수를 받는 이변이 생겼다. 2주 뒤인 1976년 6월7일자 '타임'지의 '현대생활' 섹션에는 '파리의 심판'이란 제목의 와인기사가 하나 실렸다. "지난주 파리에서는 수프리에씨가 주관한 격식을 갖춘 비교와인시음회가 열렸는데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캘리포니아산이 모든 골(Gaul,프랑스)들을 패배시켰다"로 시작되는 기사는 관련 사진도 없고 큼지막한 '암스트롱' 타이어 광고에 묻혀 제대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부터 프랑스 와인에 대한 막연한 열등감에 젖어 있던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각종 미디어들의 호들갑스런 보도가 이어졌다. 이들은 뜻밖의 호재를 만나 내용을 확대하고 심지어 없는 이야기도 사실처럼 퍼뜨렸다.
이런 적극적인 홍보 덕인지 많은 사람들은 '파리의 심판'을 단기간 내에 비약적으로 품질이 향상된 캘리포니아 와인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견고한 프랑스 와인의 아성을 무너뜨린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음회 관련 내용을 냉철하게 분석해보면,미국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의도된 점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크게 앞선 선발주자는 후발주자와 1 대 1로 비교되어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이겨봐야 본전이고 지면 큰 타격을 받는다. 특히 이 경우는 프랑스 와인업계가 가만히 앉아 있다 뒤통수를 맞은 격으로,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먼저 와인 선정에서 채점 방법까지 모든 사항을 비즈니스 목적상 미국 와인을 홍보할 필요성이 있던 개인이 계획하고 준비했다. 더욱이 프랑스 미디어의 참여는 전혀 없이 타임지 파리특파원만이 유일하게 취재했기 때문에 미국 미디어들이 크게 떠벌리지만 않았다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평범한 시음회였다.
둘째,라벨을 가리기는 했어도 비교시음회의 방법이나 절차상 논쟁점은 항상 있게 마련이며 아주 작은 조건 변화 하나에도 순위가 쉽게 달라지는 최종 결과에 대한 신뢰수준도 크게 높지 않다. 이점은 거의 모든 비교시음회에서 제기되는 문제로,사람의 미각과 후각은 기계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데 근거한다. 얼마나 불완전하면 본인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도 구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지 않은가. 더구나 한 자리에서 열 가지 넘는 비슷한 와인을 시음하다 보면 입안의 미각돌기는 자극을 받아 정확한 느낌의 전달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셋째,시음된 캘리포니아 와인은 레드와 화이트와인 각각 6가지인데 비해 프랑스산은 4가지로 확률적으로도 캘리포니아산이 유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평가에 사용된 20점 스케일로는 와인 간의 미세한 차이를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넷째,캘리포니아에 비해 추운 보르도나 부르고뉴산 와인들은 상대적으로 오랜 숙성기간이 필요한 점을 간과하고 비슷한 빈티지의 와인들을 비교시음한 점이다.
이밖에도 의문점은 또 있다. 심판관들은 두 나라 와인이 직접 비교 시음된다는 점을 언제 알았으며 참석한 동기는 무엇일까. 자국 와인에 대한 자만심에 빠져 캘리포니아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거나,의외의 결과에 대한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지 가늠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프랑스인들에게 와인은 자신들의 일부이며 자부심이다. 그들은 단 한 번의 시음회 결과로 심하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으며,참가한 심판관들도 개인적으로 많은 곤욕을 치렀다. 물론 스티븐 스푸리에도 보르도와 부르고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인사가 됐다. 심지어 '영국인만이 저지를 수 있는 꼼수'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음회를 계기로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신세계에서도 프랑스 와인에 버금가는 우수한 와인이 생산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준 것만은 확실하다.
/와인 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sowhatchoi@gmail.com
최종 결과로 레드와인에서 캘리포니아 '스택스 리프 와인 셀러' 와인이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2~4등은 모두 보르도산이 차지해 그나마 체면 유지는 했다. 그러나 화이트와인에서는 캘리포니아산 '샤토 몬트레나'가 부르고뉴의 명품들을 제치고 최고 와인으로 선정됐고,다른 캘리포니아 와인들도 3,4번째로 많은 점수를 받는 이변이 생겼다. 2주 뒤인 1976년 6월7일자 '타임'지의 '현대생활' 섹션에는 '파리의 심판'이란 제목의 와인기사가 하나 실렸다. "지난주 파리에서는 수프리에씨가 주관한 격식을 갖춘 비교와인시음회가 열렸는데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캘리포니아산이 모든 골(Gaul,프랑스)들을 패배시켰다"로 시작되는 기사는 관련 사진도 없고 큼지막한 '암스트롱' 타이어 광고에 묻혀 제대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부터 프랑스 와인에 대한 막연한 열등감에 젖어 있던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각종 미디어들의 호들갑스런 보도가 이어졌다. 이들은 뜻밖의 호재를 만나 내용을 확대하고 심지어 없는 이야기도 사실처럼 퍼뜨렸다.
이런 적극적인 홍보 덕인지 많은 사람들은 '파리의 심판'을 단기간 내에 비약적으로 품질이 향상된 캘리포니아 와인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견고한 프랑스 와인의 아성을 무너뜨린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음회 관련 내용을 냉철하게 분석해보면,미국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의도된 점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크게 앞선 선발주자는 후발주자와 1 대 1로 비교되어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이겨봐야 본전이고 지면 큰 타격을 받는다. 특히 이 경우는 프랑스 와인업계가 가만히 앉아 있다 뒤통수를 맞은 격으로,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먼저 와인 선정에서 채점 방법까지 모든 사항을 비즈니스 목적상 미국 와인을 홍보할 필요성이 있던 개인이 계획하고 준비했다. 더욱이 프랑스 미디어의 참여는 전혀 없이 타임지 파리특파원만이 유일하게 취재했기 때문에 미국 미디어들이 크게 떠벌리지만 않았다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평범한 시음회였다.
둘째,라벨을 가리기는 했어도 비교시음회의 방법이나 절차상 논쟁점은 항상 있게 마련이며 아주 작은 조건 변화 하나에도 순위가 쉽게 달라지는 최종 결과에 대한 신뢰수준도 크게 높지 않다. 이점은 거의 모든 비교시음회에서 제기되는 문제로,사람의 미각과 후각은 기계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데 근거한다. 얼마나 불완전하면 본인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도 구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지 않은가. 더구나 한 자리에서 열 가지 넘는 비슷한 와인을 시음하다 보면 입안의 미각돌기는 자극을 받아 정확한 느낌의 전달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셋째,시음된 캘리포니아 와인은 레드와 화이트와인 각각 6가지인데 비해 프랑스산은 4가지로 확률적으로도 캘리포니아산이 유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평가에 사용된 20점 스케일로는 와인 간의 미세한 차이를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넷째,캘리포니아에 비해 추운 보르도나 부르고뉴산 와인들은 상대적으로 오랜 숙성기간이 필요한 점을 간과하고 비슷한 빈티지의 와인들을 비교시음한 점이다.
이밖에도 의문점은 또 있다. 심판관들은 두 나라 와인이 직접 비교 시음된다는 점을 언제 알았으며 참석한 동기는 무엇일까. 자국 와인에 대한 자만심에 빠져 캘리포니아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거나,의외의 결과에 대한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지 가늠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프랑스인들에게 와인은 자신들의 일부이며 자부심이다. 그들은 단 한 번의 시음회 결과로 심하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으며,참가한 심판관들도 개인적으로 많은 곤욕을 치렀다. 물론 스티븐 스푸리에도 보르도와 부르고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인사가 됐다. 심지어 '영국인만이 저지를 수 있는 꼼수'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음회를 계기로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신세계에서도 프랑스 와인에 버금가는 우수한 와인이 생산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준 것만은 확실하다.
/와인 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sowhat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