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태릉,정릉,광릉 등 조선왕릉을 딴 지명에는 익숙해도 막상 조선왕릉 자체에는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어,가장 많은 조선왕릉이 모여있는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을 찾았다.

경건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이 손님을 정중하게 맞았다. 왕릉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해온 나무들이 울창했고 새와 다람쥐,청설모,잠자리가 그 사이를 신나게 누비고 있었다. 무엄하게도 왕릉 주변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두꺼비에 잠시 눈길을 빼앗겼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연둣빛 잔디로 뒤덮인 왕릉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날이 개기 전 쏟아졌던 소나기에 젖은 옷을 추스리며 뒤를 돌아보자,촉촉한 풀냄새와 더불어 졸졸 흐르는 시내가 비와 합작해 만들어낸 희뿌연 물안개가 아슴푸레 피어올랐다. 왕릉이라는 '염불'보다 풍경이라는 '잿밥'에 한눈을 팔고 있던 순간,문화해설사의 노련한 설명이 '염불'의 참멋을 일깨워주었다.

동구릉에는 태조의 건원릉부터 제24대 헌종의 경릉까지 총 9릉이 있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가 잠든 건원릉에 가자 관람객들이 "왕릉 관리를 제대로 하는 거요?"라고 항의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깔끔하게 정리된 다른 왕릉과 달리,건원릉 봉분에는 잡초로 추정되는 풀들이 길게 솟아나와 삐죽삐죽하니 그런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얼핏 보면 멋대로 방치된 듯한 건원릉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태조는 고향인 함흥에 묻히길 소원했으나 조선을 개국한 왕을 그렇게 모시기는 곤란한 노릇인지라,아들 방원(태종)은 아버지의 소망을 문자 그대로 들어주는 대신 함흥에서 억새를 가져와 봉분에 심었다. 자주 손질하면 억새가 죽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건원릉은 1년에 한 번 한식에만 벌초를 한단다.

건원릉에는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박명섭 해설사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 장군을 모시는 무속인들이 소위 기를 받기 위해 건원릉에 몰래 올라가 '도둑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건원릉 주변에는 막걸리 사발과 사과,북어 등이 나뒹군다고.

왕과 비를 함께 모실 때는 능을 앞에 마주한 상태에서 오른쪽이 왕의 자리이고 왼쪽이 비의 자리다. 그런데 예외는 있는 법,그 중 하나가 효명세자(익종)와 신정왕후를 모신 수릉이다.

흔히 조 대비로 알려진 신정왕후는 여걸이 많은 조선 왕실에서도 손꼽히는 지략가였다. 20대 초반에 요절한 효명세자의 비인 신정왕후는 아들 헌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철종 때에는 대왕대비에 오른 데다,나중에는 고종을 효명세자의 양자로 받아들여 왕으로 세운다.

효명세자는 고종이 황제에 오르자 문조익황제로 추존된다. 신정왕후도 고종의 모친 자격으로 상당한 권력을 누렸다. 사망 당시 남편은 세자였는데 아내는 황실 웃어른이었으니,일종의 신분차(?)를 감안해 예외적으로 신정왕후가 오른쪽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남존여비 사상에서 보면 좀 껄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뛰어난 비 덕에 사후 엄청난 신분 상승을 했으니 효명세자도 불만이 없지 않을까 라고 혼자 생각해 봤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제대로 적용되는 문화재가 왕릉이다. 보통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이에 맞춰 왕릉을 답사해보는 건 어떨까. 동구릉 기준으로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대부분 왕릉은 마치 동산처럼 보이는 강(岡) 위로 올라가 능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하는 게 원칙이지만,일부 왕릉은 강 위에 올라 관람하는 게 허용된다.

영녕릉(세종,효종),동구릉의 목릉(선조),서오릉의 명릉(숙종),영월 장릉(단종),선정릉의 선릉(성종),광릉(세조),헌인릉(태종,순조) 등이 그것. 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해 모든 왕릉이 12일까지 무료개방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