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타이거' 위에 나는 '라이언' 있었네
"날이면 날마다 61타를 칠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닌데…."

미국PGA투어 AT&T내셔널 첫날 경기를 8언더파 62타로 마치고 마지막 홀인 9번홀 그린을 벗어나는 재미교포 앤서니 김(24 · 나이키골프)의 얼굴엔 아쉬움이 배어있었다. 두 개밖에 없는 파5홀에서 약 3m거리의 버디퍼트가 홀을 외면하고 파에 그쳤기 때문.그 퍼트가 들어갔으면 생애 최소타인 61타를 기록할 수 있었던 그는 그래도 모처럼 리더보드 맨 위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앤서니 김은 3일(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콩그레셔널CC(파70 · 길이 7255야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보기없이 버디만 8개 잡고 코스레코드이자 자신의 18홀 최소타인 62타를 기록했다. 타이거 우즈(34 · 미국)를 비롯한 공동 2위 선수들보다 2타 앞선 단독 1위로,이 대회 2년 연속 우승을 향한 디딤돌을 놓았다.

인코스에서 출발한 김은 15번홀부터 8번홀까지 12개홀에서 여덟 개의 버디를 솎아냈다. 특히 절정에 이른 아이언샷(그린 적중률 94%)에 힘입어 18홀 중 17차례나 버디 기회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3라운드부터 40홀 동안 '노 보기' 행진을 벌인 후 "이 코스는 내게 딱 맞는다. 오늘 3~4m거리의 퍼트는 거의 놓치지 않았다"고 말한 데서 보듯 이 코스와 '찰떡 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62타는 그의 18홀 최소타수를 1타 경신한 새 기록이다. 종전 최소타는 2007년 크라운플라자 인비테이셔널 1라운드에서 기록한 63타였다. 올 들어서는 마스터스토너먼트 2라운드 때 버디 11개를 잡으며 기록했던 65타가 가장 좋은 스코어였으나 그보다 3타나 더 적게 친 것.지난해 우승 당시 첫날 스코어 67타에 비해서도 5타나 좋다.

시즌 초 왼손 엄지 부상에 시달린 김은 2주 전 US오픈에서 16위,지난주 트래블러스챔피언십에서 11위를 하며 부상에서 벗어났음을 알렸다. 이날 드라이버샷(거리 298야드,정확도 71%)에서 보듯 300야드에 육박하는 거리를 내면서도 정확도도 높았다. 엄지가 정상이 되면서 그의 주무기인 페이드샷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엄지가 아플 때에는 백스윙 때 그립을 다시 잡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힘을 주지 못했다. 그로 인해 내 구질인 페이드를 구사하지 못하고 드로가 나오면서 샷이 들쭉날쭉했는데 지금은 예전 스윙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파워가 붙으면서 드라이버 로프트도 종전 8.5도에서 8도로 낮췄고,더 강한 샤프트를 장착하고 이번 대회에 나섰다고 했다.

'라이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김이 타이틀을 방어하며 시즌 첫승을 거두는 데는 '황제'의 벽을 넘어야 한다. 대회 주최자인 우즈는 이날 11번홀(파4)에서 두번 째 샷이 벙커에 빠져 보기 하나를 기록했지만 버디 7개로 흠잡을 데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우즈는 대회 전 "주최자가 우승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 아니냐?"며 우승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2007년 챔피언인 최경주(39 · 나이키골프)는 7오버파 77타로 119명 중 117위에 머물렀다. 선두와는 15타차다. 전반 스코어만 비교할 때도 김이 29타,최경주가 39타로 아홉 홀에서 10타나 차이가 났다. 퍼트(총 33개) 부진에 발목이 잡힌 최경주는 버디는 1개에 그쳤고 보기 4개와 더블보기 2개를 기록하고 말았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
뛰는 '타이거' 위에 나는 '라이언'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