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제 상황은 정규직까지 내몰아야 하는 형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지만 무작정 비정규직을 떠안을 수는 없다. "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더라도 일단 남아있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데 지금 비정규직법은 당장 내보내라고 강요한다. "

3일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이영희 노동부 장관과 14개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정규직법 관련 간담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비정규직법이 기업의 현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바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인력파견 업체 S사의 조모 이사는 "지난해 정규직 전환율이 10% 선에 그친 데다 최근 경제위기나 중소기업의 경영 상황 등을 감안할 때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내보내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라며 "정부의 법인세 감면 등은 사실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조 이사는 "일단 개정이 되든,유예가 되든 이들을 붙잡아둘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다른 인력파견 업체 M사의 오모 상무는 "요즘 고객사들이 '새로운 사람을 뽑는 것보다 이들과 더 일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느냐'는 문의를 계속 해오고 있다"며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결국 계약 해지에 나서는 실정"이라고 답답해 했다.

오 상무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열의도 있고 노력도 더 하는 등 정규직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지만 법적 제한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L호텔 관계자는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기업 경영 상황 때문에 전환비율은 20%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년이라는 짧은 시간만 가지고는 전환보다 해고 쪽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사 담당자들은 비정규직법이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지적도 쏟아냈다. 비용부담 때문이 아니라 일의 특성상 정규직 전환이 곤란한 업무가 있는데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신용정보업체의 백모 인사팀장은 "1000여명의 직원 중 80%가 채권추심 업무를 맡고 있으며, 이런 업무는 매년 따로 위탁 계약을 맺기 때문에 업무 수주량이 해마다 크게 달라진다"며 "당장 내년에 한 건의 위탁계약도 체결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어떻게 800여명에 달하는 직원을 모두 전환시킬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업체인 K사의 허모 팀장은 "주간 근로시간 15시간 미만의 파트타임 근로자는 비정규직법에 예외 규정으로 두고 있는데 실제로는 15시간을 넘는 파트타임 근로자들이 많다"며 "그렇다고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기업 중에는 SK텔레콤과 메리츠화재 등 대부분 비정규직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 등으로 전환했거나 전환을 추진 중인 곳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인사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정치권이 빨리 나서 유예 여부를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는 한 목소리를 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이처럼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정규직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영세 중소기업이 느끼는 혼란은 더욱 심각할 것"이라며 "조만간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고경봉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