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든 곱든 공공기관을 낙후된 지역에 이전하겠다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준 선물입니다. 더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재를 뿌려서야 되겠습니까?" 경북 혁신도시 건설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김천시청 관계자는 '혁신도시 불가역(不可逆)'의 논리로 선물론을 폈다. 가난한 집에 들어온 선물을 빼앗으면 성난 민심을 달래기 어렵다는 뉘앙스다.

'2012 오작교 결연 환영식' '진주사랑 내 사랑 커플 이벤트'…. 지난달 중순 경남 혁신도시로 지정된 진주의 시청 공무원들은 미혼남녀 짝짓기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진주로 이전할 12개 공공기관의 총각과 진주시의 처녀를 맺어준다는 취지였다.

전국 10개 시 · 도별로 착공에 들어간 혁신도시는 지역민들의 소망대로 선물이 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토지 조성 원가가 인근 산업단지보다 4배가량 높아 '핵심 기업(anchor enterprise)' 유치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형편이다. 기존 구도심은 혁신도시에 인구와 자원,상권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균형을 위한 정책이 지역 내 또 다른 불균형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이 혁신 이끈다고?

참여정부가 구상한 혁신도시의 기본 방향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자립형 지방화 전략이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펴낸 '국가균형발전의 비전과 전략'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계기로 지역별 특화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을 끌어들이고,산 · 학 협력을 유도하는 등 핵심 역할을 공공기관이 맡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기업들은 애초부터 혁신을 주도할 생각이 없다. 최근 공기업 경영평가가 끝난 뒤 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평가위원들이) 혁신도시 얘기는 하나도 묻지 않아 격세지감을 느꼈다"며 "전 정권이었으면 이게 핵심 평가 잣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특화 산업에 맞는 공공기관을 각 혁신도시에 이전시킨다고는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참여정부 시절 발표된 제1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진주의 핵심 전략 산업은 지식기반 기계,로봇,지능형 홈,바이오 등이다. 반면 진주에 들어올 공공 기관은 주택공사(토지공사 통합 후 주공이 진주로 올지는 미정) 등 주택건설 분야와 중소기업진흥공단,국민연금 등이다. 도대체 기업 간 사업 시너지를 찾아볼 수 없는 조합이다.

충북 진천으로 가게 될 한국소비자원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다. 2008년 기준으로 민원인의 76.9%가 서울,인천,경기 지역민들이다. 앞으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10명 중 8명은 불량 제품을 들고 진천행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얘기다.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은 "지역 간 합의와 절충 방식으로 안배를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강제' 지방 이전은 공기업 선진화 방안과도 배치되는 측면이 크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비용 절감을 위해 통폐합을 하고 각종 혁신기법들을 도입하는 마당에 국제공항 한번 가려면 몇 시간씩 자동차로 이동해야 하는 지방으로 가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기업의 비효율은 결국 가스비,전기료 인상 등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재산 소송에 도심 공동화까지

공기업 이전의 비효율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얽힌 실타래는 또 있다. 수천억원대의 토지 보상비가 풀리면서 혁신도시 부지가 들어설 진주시 문산면 일대에는 가족 분쟁이 유난히 많아졌다.

문산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족히 가는 하동군 일대는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민심이 흉흉하다. 한 부동산 업자는 "혁신도시 하면 최소한 이마트는 들어오지 않겠느냐"며 "돈 좀 있다고 하는 하동 사람들은 진주 일대로 이사할 생각들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내 차별과 기존 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신도철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지원의 혜택이 그 지역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부동산 소유자나 건설업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현 균형개발 정책의 허점"이라며 "또 다른 문제는 혁신도시가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지역에 계속 남도록 유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우익 서울대 교수는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 쓴 글에서 "개발 수요가 한정돼 있는 비수도권 지역에서 신도시 개발은 기존 도심과 '제로섬 게임'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성원가 높아 기업 유치 난망

이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혁신을 주도할 기업이나 연구기관 등을 유치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모 혁신도시 후보지의 3.3㎡당 조성원가는 150만원인 데 비해 인근 산업단지는 40만원에 불과하다. 비용은 둘째 치고 인재,시장,물류 등 도시를 형성하기 위한 기본 여건조차 안 돼 있다.

지방 대학교의 경쟁력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젊은 인재들이 지방 근무를 꺼리는 것도 큰 난관이다. 국토해양부의 한 관계자는 "충청권에 있는 서울 명문 분교조차 서울에 있는 비교적 덜 알져진 대학보다 순위가 처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기업들은 필요한 인력들을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전에는 지방에 신규 사업장을 열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모기업 관계자는 "아무리 근무여건이 좋다 하더라도 젊고 능력있는 인재들은 수도권을 벗어나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특단의 지원 정책이 없다면 민간 기업의 지방 이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휘/진천=오상헌/진주=박신영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