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테 오이시이데스요(싸고 맛 있어요)."

지난 3일 오후 6시께 일본 도쿄시내 상업 중심지인 JR 이케부쿠로역 인근 대로변.미니 스커트 차림의 젊은 아가씨들이 퇴근길 샐러리맨들에게 할인쿠폰을 나눠준다. 이들이 주는 쿠폰은 외식업체에서부터 가라오케,주점 등을 이용할 때 10~20% 정도 할인해 주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소비시장에 가격파괴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거리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문구는 '할인(割引)''SALE'이다. 올 들어 도쿄 편의점에는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을 겨냥해 평소의 절반 가격인 250엔(약 3000원)짜리 도시락까지 등장했다.

백화점,대형마트,쇼핑몰은 물론 중소 자영업자들까지 최고 50%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다. 신주쿠역 앞 오다큐백화점에는 매장 곳곳에 '여름 세일 전품목 30%'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요즘 신업태로 뜨는 대형 쇼핑몰들도 마찬가지.도쿄 인근 사이타마현에 지난해 문을 연 초대형 쇼핑몰 '이온레이크타운' 내 점포들은 예외없이 30~50% 세일 중이다. 50% 할인 행사를 하는 유니클로 매장에는 티셔츠 등 500엔짜리 상품이 넘쳐난다.

외식업계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저가 메뉴로 승부를 걸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200여개 점포를 운영 중인 이자카야 체인점 산코우마케팅은 올 들어 새 브랜드로 '긴노쿠라 주니어(金の藏 Jr.)'를 론칭했다. 이곳에선 모든 메뉴를 300엔 균일가로 팔아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이자카야 업계를 선도해 왔지만 고객들이 가격에 민감해 저가 브랜드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거꾸로 불황 덕을 보는 업체들도 나타났다. 슈퍼 등에 빵을 공급하는 케이크 제조업체 '돈레미(ドンレミ)'는 식품아울렛 매장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다. 이 회사는 제조과정에서 모양이 약간 흐트러진 제품을 정상가보다 30% 싸게 판다. 품질은 같고 값이 싸다는 소문이 나면서 도쿄시내 키타센쥬 직영점에는 개점 전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중고 주방설비를 공급하는 리사이클 업체 '템포스바스타즈'도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전국에 43개 체인점을 보유한 자스닥 상장업체로 신제품보다 최대 50% 저렴한 가격으로 주방을 만들어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모리시타 와코 사장은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창업자의 최대 관심은 '가격'"이라며 "외식업계의 생존 키워드는 가격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지표를 봐도 일본 소비자들이 불황으로 가격에 더 민감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론 내각부 통계에 따르면 샐러리맨들의 평균 점심값은 5년 전 860엔에서 올해 680엔으로 20%가량 떨어졌다. 지난 5월 기준 1인당 급여는 1년 전보다 2.9% 줄어든 26만7395엔으로 조사됐다. 대신 실업률은 5.2%로 전달(4월)보다 0.2%포인트 상승,5년8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한 · 일 외식업 컨설팅회사인 ㈜K&J의 아라이 미찌나리 대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소비시장도 1~2년 이상 침체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며 "품질은 유지하면서 최대한 가격을 내리는 마케팅 전략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쿄=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