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위로 떠오른 '減稅 유보'
내년 법인세와 소득세의 2단계(순이익 2억원 초과 대법인과 연소득 8800만원 초과 고소득 구간 대상) 세율 인하와 관련한 정부 및 여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예정대로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밑에선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답이 안 나온다"며 '감세 유보설'을 흘린다. '넓은 세원,낮은 세율'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조세개혁 원칙이 '표 논리'에 밀릴 것 같은 분위기다.

◆"감세 유보 공론화 필요"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쓸 곳은 늘어나는데 세수는 부족한 상황을 고려할 때 내년 법인세와 소득세율 인하를 당분간 유보할지 이제부터 공론화를 시작해야 한다"며 "내년 나라살림의 아웃 라인이 짜여지면 기획재정부에서 당연히 고민을 털어놓을 것이고 그 때부터 당에서 갑론을박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은 "감세원칙은 지켜져야 하지만 법인세 소득세 인하 유보는 절대 안 된다는 식으로 선을 그어놓고 예산을 짤 수는 없다"며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국회에서 '내년 인하계획을 유보하자'는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의 제안에 '검토해볼 만하다'고 답변한 건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튀어나온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재정부는 윤 장관의 발언을 '오해'로 정리했지만 그 이상의 '복선'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분분하다.

◆정부는 내심 "물꼬 터줬으면"

지난해 12월 세법 개정으로 과세표준 2억원 초과 구간에 적용되는 법인세율은 올해 22%로 낮춰졌고 내년부터는 20%를 적용할 예정이다. 소득세는 1200만원 이하 낮은 소득구간의 세율은 8%에서 6%로 낮춘 반면 8800만원 초과 고소득구간 세율은 올해 일단 35%로 동결했다가 내년부터 33%로 인하할 예정이다.

이 같은 법인세 · 소득세 인하 계획을 1년 유예할 경우 내년에만 10조원가량의 추가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부는 '유보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정부로선 매력적인 카드다. 당장 올해만도 관리대상수지 적자가 51조원(GDP 대비 5%)에 달하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는 사태까지 점쳐지는 상황이다.

특히 고소득구간과 과표구간 2억원 이상 대법인에 초점을 맞춘다면 '부자감세' 올가미에서도 빠져나오고 청와대의 '친서민 행보'와도 코드를 맞출 수 있다. 정부가 앞장서 주장할 수 없는 만큼 내심 정치권이 불을 지펴주길 바라는 눈치다. 야당 및 무소속 의원들이 제출한 4건의 세율인하 유보 법안을 두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라는 반응은 그래서 나온다.

◆여당 경제통 의원들 "MB노믹스 포기"

세수 고민을 해결하려는 정부와 10월 재보선 및 내년 상반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생각해야 하는 여당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 감세 유보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여당 경제통 의원들이 일제히 "MB노믹스 포기"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 변수다.

고승덕 의원은 이날 기자와 만나 "소득세 법인세 같은 직접세율은 세계적으로 인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우리만 세율 낮추는 것을 미룬다면 기업 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최경환 의원은 "감세는 지난 10년간 일관되게 유지해온 한나라당의 정책기조"라며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가 갑자기 닥쳤다고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종구 의원 역시 "선진국에 비해 아직 양호한 재정건전성은 우리의 장점이자 무기"라며 "민간경제 활력을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율 2단계 인하를 포기하는 것은 안 된다"고 거들었다. 나성린 의원도 "세수가 부족하다면 원칙대로 비과세 감면 정비와 불필요한 세출 구조조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기현/이준혁/정종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