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혁신도시 새판 짜자] ⑥ 땅은 어떻게, 인센티브는 어디까지…정해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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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도시의 안개를 걷어라
1990년대 초 조성된 경기도 성남의 분당 신도시는 당초 자족도시(自足都市,Self-sufficient City)를 목표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주택용지 비율을 낮추고 정보산업시설 등이 들어설 업무용지를 8.3%까지 늘렸다. 하지만 기업이나 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나 인센티브는 정밀하게 마련하지 못했다. 업무용지는 결국 주인을 찾지 못했고 정부는 일부를 택지로 용도변경해야 했다.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들이 끝내 서울의 '베드타운'에 머물고 만 사연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와 전국 10개 혁신도시들의 운명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나마 수도권이라면 '베드타운' 역할이라도 할 수 있지만 지방 곳곳에 흩어지다 보니 그런 안전판도 기대하기 힘들다. 도시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지,신규 인구유입이 얼마나 이뤄질지 도시계획을 맡은 사람들은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다. 세종시와 혁신도시가 '지방표'를 노린 이전 정부의 정치적 산물이란 비판에까지 직면하면 '자족도시' 건설이 이들 도시엔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다. 하지만 자족도시로 가는 길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기업 연구소 대학 등을 유치할 수 있는 호소력 있는 전략이 보이지 않고 구체적으로 물색할 수 있는 대상도 없다. 정부가 마련한다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공개 앞둔 자족기능 보완책
정부는 작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를 통해 올 6월 말까지 세종시 자족기능 보완방안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기한을 넘겨서도 아무런 얘기가 없자 야당과 충청지역 국회의원들은 '세종시 추진을 지연시키는 술책이 아니냐'며 눈을 부라렸다. 조속히 세종시 자족기능 보완책을 밝히라고 연일 정부 측에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지난 5월 지자체들의 용역결과를 취합해 마련한 국토해양부의 '혁신도시 발전방안'은 일러야 이달 말께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짓느냐,마느냐'가 아닌 '어떻게 지을거냐'를 놓고 벌일 힘겨루기도 결국 정치싸움으로 흐를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세종시 자족도시 보완책의 골자는 크게 세 가지다. △굴지의 기업이나 대학,연구소를 유치할 넓은 땅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 땅을 얼마나 싸게 공급할 수 있느냐 △정부가 베풀 수 있는 인센티브는 어느 선까지인가가 핵심이다. 현실은 간단치 않다. 기업이나 대학이 들어서 생산과 고용을 창출할,이른바 '자족용지'는 세종시 전체 면적의 6%밖에 되지 않는다. 20년 전 분당(8.3%)보다도 좁게 계획됐다. 세종시가 자족도시로 발전하려면 이 비중을 20~30% 정도로 늘려야 한다는 게 도시공학 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자족용지 비율을 높여도 다음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족용지는 아파트용지(3.3㎡당 320만원)보다 훨씬 싸게 팔아야 하는데 얼마에 원가를 맞춰야 할 지,정부와 토지공사가 이 과정에서 얼마를 더 부담해야 할지,땅 공급가를 낮추기 위해 녹지비율을 얼마나 줄여야 할지 등의 과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세종시 인구와 아파트 세대 수,토지이용계획 등을 완전히 다시 손봐야 할 수도 있는 사안들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적어도 8,9월은 가야 자족기능 대책이 나올 것이란 관측을 해볼 수 있다.
'혁신도시 발전방안'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립되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은 '지금 밝힐 단계가 아니다'는 말로 일관한다. 정완대 추진단 부단장은 "혁신도시의 조성원가를 전체적으로 14.3% 낮추기로 했다는 점 외에는 알려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국토부의 태도에 지자체들은 이미 심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특목고 설치 등 정주(定住)여건 개선과 U(유비쿼터스)시티,범죄예방시스템,선진도시기법 도입 등 그리 대단치 않은 내용들인데도 정부가 왜 입을 다물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세종 · 혁신도시,기업유치 다툴 수도
'행복도시 세종'이란 안내책자를 보면 행복도시건설청은 기업활동을 획기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인근 산업단지의 40~70% 가격으로 토지를 공급하겠다는 표현이 나온다. 근처 오창의 산업단지 분양가격이 3.3㎡당 70만~100만원 정도인데 거기보다 30% 이상 더 싸게 공급한다고?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행복도시건설청은 이에 대해 "기대치를 내보인 것일 뿐 실제로 그렇게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다음 장에 있는 '국내기업에 법인세와 소득세를 5년간 100%,이후 2년간 50% 감면해주고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는 5년간 100%,이후 3년간 50% 감면해주겠다'는 내용은 지방이전 수도권 기업에 대한 종전 세제혜택과 다를 바 없다. 입지보조금(한도 100억원) 투자보조금(5억원) 고용 · 교육훈련보조금(4억원) 공장신설 · 이전보조금(2억원) 등도 모두 충청남도에서 이미 실시 중인 투자유치책이다. 특별히 세종시 차원에서 주는 혜택을 열거할 만한 게 없다.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세제감면을 언급하면서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수준의 혜택을 주고 관련 세법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는 게 전부다.
물론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보였다간 '혁신도시로 들어갈 기업까지 세종시가 다 뺏어간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세종시 건설청은 "중소기업 위주의 유치전략을 펴는 혁신도시와는 직접적 경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지만 코너에 몰리면 '내것,네것' 가리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이다.
◆KTX의 딜레마
KTX를 활용해 서울과의 접근성을 좋게 하는 건 어떨까? 이미 세종시 건설청은 내년 KTX역이 들어설 오송 방면으로 도로망을 깔고 있다. 그러면 세종시에서 서울역까지 55분이면 닿는다. 하지만 이도 적극적으로 홍보하진 않는다. 건설청은 "2007년에 'KTX타면 1시간 만에 서울 도착하는 특급열차 운행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가 난리가 났었다"고 귀띔했다. 서울과 가깝다면 누가 세종시로 들어와 살겠느냐는 반론 때문이었다. 국토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도 "효율성만 놓고 보면 서울과의 접근성을 좋게 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서울과 적당한 시간적 거리를 유지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명분을 충족시키려다 보니 일부러 서울과의 근접성을 떨어뜨려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한 형국이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