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대대적인 감세(減稅) 정책을 편 지 1년여 만에 세금 정책 기조를 증세(增稅)로 바꾸고 있다.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에다 서민층을 껴안아야 한다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고소득층 대상으로 선별적 증세에 시동을 걸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8일 정부와 여당 일각에 따르면 당 · 정은 지난해 이후 유지해온 감세 기조를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고 보고 세제 정책 방향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입장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미 증세 방안들을 놓고 조세 정책의 싱크탱크인 조세연구원을 통해 정책토론회를 여는 방식으로 공론화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는 오는 8월 말 나올 세제개편 방향에 구체적인 방안을 담을 예정이다.

여당 내 고위 관계자는 "이른바 '부자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상속세 증여세 인하 등에 관련된 기존 세제 정책의 재검토가 진행 중"이라며 "상속 · 증여세 인하는 당 · 정 간에 예정대로 추진하는 것이 어렵다는 쪽으로 입장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도 "경제위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중산층 이하 계층의 소득이 줄면서 부자 증세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정책에 정치논리가 개입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주택 보유자의 전세보증금에 소득세 부과를 추진하는 것이나,지난해 세제개편안의 근간을 이루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단계적 인하 유보론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입장이 정해진 바 없다"지만 이미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재정 부담이 큰 각종 비과세 · 감면을 축소하기로 한 정부가 뒤늦게 방향을 수정해 고소득층과 대기업 대상의 비과세 · 감면만 선택적으로 손보기로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회에서 1년 가까이 계류돼 있는 상속 · 증여세 인하안도 연기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조세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일관성"이라며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감세 조치를 유보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종태/이태명/차기현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