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절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다. 불황이 닥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샀던 사람은 고통을 받지만, 더 살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한 이에게는 싼값에 자산을 늘리는 기회일 뿐이다. 주식도 다를 바 없다. 누군가는 반토막이 나서 괴롭지만 또 다른 사람은 2배로 사 모을 수 있게 됐다며 쾌재를 부른다.


불황기는 이렇게 논리상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기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양극화가 아니라 전면적인 재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50여년 역사의 리먼브러더스와 미국의 상징이었던 GM이 쓰러지고 10여년 전에만 해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구글 세컨드라이프 같은 젊은 기업들이 약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 다음 등 벤처기업이 10년 사이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됐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부의 재편 양상을 보면 비교적 간단한 논리에 움직인다. 호황기에 지렛대 효과를 통한 성장을 목표로 과감하게 부채를 떠안았던 기업들이 그 빚 때문에 유동성 위기에 몰려 하루 아침에 경영권을 잃게 되는 식이다. 현금만으로 사업을 해온 구두쇠 기업들이 이때 빛을 본다. 무리하게 확장했던 기업들이 쓰러진 그 자리에 기회를 노리던 후발 기업들이 자리잡게 되면서 부의 재편이 일어나는 것이다. 10여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부의 재편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의 양극화가 아니라 부의 재편이 일어나는 이 변화에 대한 설명은 많다. 국가적인 차원의 경쟁에서 예전 채무국들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전 세계 경제력 및 영향력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또 금융기법이 발달하면서 금융시장 진입장벽이 사실상 없어져 시장참여자들이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여기다 세계적인 고령화로 소비의 중심이 중장년 이상으로 높아진 사실, 또 인터넷의 광범한 보급에 따라 기업과 소비자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한것을 이유로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앨빈 토플러의 말대로 이제까지의 사회를 유지하고 있던 '심층기반' 전반이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원인이 무엇이건 부의 재편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스를 수 없는 사실이다. 시장을 둘러싼 환경과 주인공들의 역할이 크게 변하면서 기존의 대기업들이 전혀 유리하지도 않고,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소위 '개미'들도 인터넷과 발달한 금융기법을 통해 충분히 새로운 부를 이룰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점이다.

이럴 때 과거의 논리로 불황을 이겨내려고 해선 희망이 적다.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호황이 와도 별로 먹을 것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경영은 그러니까 철저히 기회요인에 맞춰야 한다. 투자와 인수ㆍ합병 같은 기회를 노려야 하고, 세계적인 인재 이동의 과정에서 새롭게 인재풀을 구성하려는 야심한 계획을 세워야 옳다.


대기업 경제력 집중을 막고 부의 양극화를 완화하며 고용안정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정책들이 사실은 과거의 방식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과연 이런 시대에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다. 오히려 이 혼란 속에서 나타나는 신호를 잡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옳다. 나라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권영설 한경 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