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하나쯤 갖고 생활의 긴장을 풀면서 살아간다. 필자도 이제까지 살면서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가장 오래된 취미는 낚시일 것이다. 대학 시절부터 낚시를 접했으니 어림잡아 이미 40년 된 취미인 셈이다.

30대 시절 한창 낚시에 미쳤을 때는 승용차에 낚시 도구를 싣고 다니다가 퇴근 후 양복 입고 넥타이 맨 채로 바로 서울 근교 낚시터로 가서 밤 12시까지 낚시하고 집에 오곤 했으니까….물론 집사람으로부터의 엄청난 비난은 당연히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민물 붕어낚시를 했지만 이제는 낚시 장르도 많이 넓어져 민물 베스 낚시,서해안 농어 낚시,우럭 배낚시,남해안 감성돔 낚시,뽈락 낚시,목포 갈치낚시,미터급 이상을 상대하는 파워풀한 제주도 방어 · 삼치 지깅낚시,아기자기한 강원도 가자미 낚시,겨울철 주문진 대구 지깅낚시,더운 여름철 피서 낚시인 계류 견지낚시,겨울철 소양강 얼음낚시 등등을 즐긴다. 바쁜 사회생활에 짬짬이 시간을 내서 가려니 가고 싶은 곳은 많고 시간은 모자라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케이블TV의 낚시 방송을 보면서 내 스스로 낚시 갈증을 풀어 보기도 하고,낚시 갈증이 극에 달할 때는 거실에서 낚시용 구명조끼를 입고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착용한 뒤 낚시 바늘을 베개에 걸어서 그 당기는 무게감을 느껴 보기도 한다. 집사람은 그러는 내가 약간 상태가 안 좋은 것으로 간주하고 휴대폰에 영상을 저장해 친구,친지에게 내 흉을 보는 데 시청각 자료로 사용하곤 한다.

작년 어느 여름날 안성에 있는 조그마한 저수지로 친구들과 밤낚시를 갔었다. 해는 저물어 사방에 깜깜한 어둠이 내리고 밤은 깊어가고 붕어는 소식이 없었다. 친구들은 지쳐서 모두 자러 들어가고 나 혼자만이 남았다. 자정이 넘어가는데 밤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이었지만 썰렁하기도 해서 비닐 우비를 입고 파라솔 밑에서 하염없이 붕어를 기다렸다. 희뿌연 새벽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스로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다. 비 속에 꼬박 앉아서 밤을 새고 있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피곤하지도 졸리지도 않았다. 또렷한 의식 속에 스스로 내게 말을 해 보았다. 꼭 꿈속에서 내가 내게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깨어 있으되 잠든 것이요,잠들어 있으되 깨어 있는 것''붕어를 기다리지만 기다리지 않는 마음'의 경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해가 뜨고 있었다. '아,이것이 바로 무심,무상의 경지가 아닐까. ' 내 40년 낚시 취미생활에 처음으로 겪어 본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야 비로소 내가 남에게 취미로 낚시를 얘기할 때 "제가 낚시에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미쳤다는 것과 심취했다는 것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미묘하고 오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낚시와 더불어 나이가 들어간다,낚시 춘추.

손영기 <GS파워사장 ykson@gspow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