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게 '솔로몬의 지혜' 얘기다. 고대 유대왕국의 솔로몬왕은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자에게 아이를 반씩 나눠주라고 한다. 아이의 생명이 경각에 달하자 진짜 아이 엄마는 친권을 포기한다. 솔로몬왕은 그 엄마가 진짜임을 간파하고 얘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가 꼭 그런 꼴이다. 입법부와 사법부,청와대,감사원 등은 서울에 남고 나머지 중앙부처는 세종시로 내려가는 '수도분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아이(입법 · 행정 · 사법 등 온전한 국가기능)를 반으로 갈라놓으면 아이의 생명(국가경쟁력)은 누가 책임지는가. 차라리 입법 · 행정 · 사법 기능을 모두 세종시로 내려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없었던 얘기'로 돌리고 세종시에 더 큰 선물을 주는 게 합리적 선택 아닐까.

세종시 문제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다 보면 '정부청사 내려가 밥집 몇개 생기는 것보다 뭔가가 형성돼야지 않겠나'하는 고언들을 자주 접한다. 그렇다면 세종시에 무엇을 더 들여놓을 수 있을까. 일단 기초과학의 핵심벨트를 만들어보는 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상을 세종시와 대덕,오송,오창과 연결짓는 아이디어 말이다. 이렇게 충청권을 과학거점도시로 육성하는 비전을 차제에 보여주면 어떨까. 경제적 실익만 따졌을 때 세종시를 과학거점도시로 육성하는 게 행정도시로 만드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혁신도시는 너무 급하게 추진됐다. 정치권에서 만든 타임테이블대로 급하게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도시를 개발하려 한다. 하지만 혁신도시의 목적은 공공기관을 들여놓는 것만은 아니다. 경쟁력있는 도시를 건설해 주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게 근본 목적이다. 문제는 혁신도시로 어떻게 지역경제에 자극을 주고 산업집적효과를 높여낼지 전략과 청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며 어떤 클러스터를 만들지 지금이라도 세밀한 전략수립이 필요하다. 토지수용으로 진척된 사업은 돌이킬 수 없지만 한 템포 늦추며 일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혁신도시는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도시가 아닌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기회 요소가 돼야 한다. 토지보상 비용을 마련하려면 만만한 게 아파트 지어 파는 것 말고 없다는 현실론이 있긴 하다. 그러나 혁신도시를 지자체별로 나눠먹는 데 급급하지 말고 전체 파이를 키울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창원 울산 포항 등이 발전한 것은 자생적 경제기반을 확고히 다졌기 때문이다.

혁신도시를 '지방분권특구'로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보자.지자체장에게 중앙정부 권한을 완전 이양해주자는 얘기다. 어떤 기업에 어떤 재정 · 세제혜택을 줄지,어떤 인 · 허가절차를 완화해줄지 지자체장이 권한을 갖고 중앙정부 승인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특구 말이다. 미 앨라배마주가 현대차 공장 유치 때 연방정부 승인을 득할 필요가 없는 시스템을 뜻한다. 유사한 개념으로는 경제자유구역을 떠올릴 수 있다. 경제자유구역의 중점이 외자유치를 위한 특례조치를 적용해주는 거라면 지방분권특구는 더 범위가 넓다.

현재로선 세종 · 혁신도시를 통해 국가발전의 새 동력을 찾기는 무리일 것 같다. 대안도 잘 나서지 않지만 더 크게는 중앙정부가 책임을 완전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뭔가 리더십이 나와줄 줄 알았는데 정말 아쉽다. 하지만 전 정권의 '설거지'가 됐든 뒤처리가 됐든,세종 · 혁신도시 정책에 대해 어느 시점에선 분명히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혁신도시가 들어서는 각 지역이 전체 국가 발전전략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정리해줘야 한다. 실무를 맡는 지역발전위원회가 흩어진 금융허브,첨단의료산업단지 등의 개발 전략을 종합적으로 조율해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최막중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