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보자기에는 몬드리안이 있고 폴 클레도 있다/…그러면서 그 표정은 그지없이 담담하다/…그것은 그대로 또한 우리 배달겨레의 예술감각이요 생활감정이다/거기에는 기하학적인 구도와 선이 있고 콜라주의 기법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가장 기능적이고 실용적이다. '

김춘수씨의 시'보자기 찬(讚)'의 일부다. 시인이 찬탄하는 보자기는 조각보다. 빨강 파랑 연두색 갑사나 모시 조각을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 잘라 색깔 맞춰 이어붙이고 실 또한 천보다 두드러진 색깔을 써서 바느질땀이 잘 드러나도록 만든 조각보는 그 자체로 조형작품이다.

밥과 김치 콩나물무침 된장찌개뿐일망정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 위에 씌워진 상보와 그 위에 놓인 쪽지는 생각만 해도 정겹고 눈물겹다. "밥 먹고 숙제하고 집 잘 봐라." "먼저 나가요. 반찬 없어도 식사 꼭 하세요. " 떠오르는 순간 중장년층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게 상보뿐이랴.

시골마을에서 가난하게 자란 50대 이상은 책보,그러니까 책과 공책을 싸서 어깨에 둘러메거나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무명 보자기를 잊지 못한다. 이사할 때마다,하숙집을 옮길 때마다 이불과 옷가지를 싸던 이불보 옷보도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보자기만 있으면 뭐든 싸고 덮고 가리고 받치고 깔 수 있었다.

보자기는 이처럼 더없이 실용적인 가변형 포장재다. 쇼핑백처럼 찢어지거나 튿어질 염려가 없는데다 풀어서 내용물을 빼낸 뒤 작게 접어 아무 데나 넣었다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된다. 가방처럼 무겁지도,부피가 커 자리를 잔뜩 차지하는 바람에 어디다 둬야 할지 고민할 일도 없다.

서울시가'서울 디자인자산 51선(選)'의 하나로 보자기를 골랐다. 시중에 유통되는 건 대부분 단순한 합성섬유 보자기지만 전통 보자기는 용도와 재료 무늬,만드는 방법에 따라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혼례용만 해도 사주단자보 예단보 노리개보 폐백보로 나눠졌을 정도다.

뭐든 자주 사용해야 발전하고 기능과 아름다움 또한 재발견된다. 서울시의 노력은 지켜볼 일이지만,백화점 사은품으로 장바구니 대신 잘 디자인된 예쁜 보자기를 주는 것도 괜찮다 싶다. 부피가 작으니 갖고 다니기 쉬울 테고 그러다 보면 초미니스커트나 핫팬츠 차림 여성이 지하철에 앉았을 때 보는 사람 민망하지 않도록 허벅지를 살짝 가리는 용도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