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와 폴란드를 뛰어넘어라.'

지난달 2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각료회의 참석차 프랑스 파리에 갔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에게 승부수를 던졌다. 2년 이상을 끌어온 한 · EU 자유무역협정(FTA)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마지막 카드를 꺼낸 것이다. 두 사람은 이 안으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여기에 복병이 버티고 있었다. EU 회원 27개국을 각개격파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난 10일 EU의 최종 입장이 정리되기까지 14일간의 숨가쁜 막전막후의 반전드라마가 전개됐다.

난제는 유보적 입장을 견지한 이탈리아와 폴란드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였다. 정부는 비상대책 수립에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두나라를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이를 적극 활용키로 했다. 이 대통령은 각 정상의 특성을 활용한 '맞춤형' 전략을 동원했다.

10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의 회담에선 '어른론'을 꺼냈다. 이 대통령은 "이탈리아는 상반기 EU 의장국 역할을 했고 G8 의장국을 맡고 있으며 유럽에서 최장수 총리이고,우리 말로 하면 '어른'인데 유럽의 대표적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자국의 산업문제 때문에 한 · EU FTA에 반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는 소형차 위주다. 현대 · 기아차는 유럽에 주로 중형차를 수출하고 소형은 인도에서 만들어 들여오기 때문에 FTA와 관계가 없다"고 설득했다. 또 "한국이 이탈리아 명품이나 기계류 등의 수입을 많이 하는데 좋은 기회를 놓치려고 하느냐"고도 했다.

이 같은 집요한 설득에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웃으면서 "우리는 같은 CEO(최고경영자) 출신이니까 서로 잘 통하는 것 같다. 이제 그만하자.동의할테니 다른 얘기를 하자"고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앞서 8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의 회담에선 '신뢰감'을 주는 데 주력했다. 한 · 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폴란드 투자가 줄어들 수 있지 않으냐는 우려를 잠재우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우리의 투자는 절대 줄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은 이어졌다. 이 대통령과 EU의장국인 스웨덴의 프레드릭 라인펠트 총리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한 · EU FTA에 대한 라인펠트 총리의 애매한 발언이 문제였다. 라인펠트 총리는 "EU내에서 이런식으로 협정을 최종적으로 할 때는 회원국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여러 난제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 타결을 기정사실화한 우리 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였다.

프레스룸 주변에선 "합의를 한 건 맞느냐"는 얘기가 나왔고 이에 양국 통상 장관은 "한 · EU FTA 협상의 잔여 쟁점에 대한 최종 합의안이 마련된 데 대해 환영하고 조기 가서명을 위한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길 기대한다"는 내용의 공동언론발표문을 서둘러 냈다.

스톡홀름(스웨덴)=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