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땅주인이동명이인? 등기관 실수로 수억 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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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관계 잘못 기재ㆍ'꾼'들의 위조서류 확인 안해
가급적 현장탐문ㆍ미국처럼 '권원보험' 활성화해야
가급적 현장탐문ㆍ미국처럼 '권원보험' 활성화해야
법원 등기소 등기관이 등기부에 부동산 권리관계를 실수로 잘못 적어 수억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등기관이 오기한 가짜 주인을 진짜 주인으로 믿고 부동산을 사거나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다가 큰 돈을 떼였다는 소송이다. 우리나라는 등기부에 기재된 주인이 가짜여도 그에 따른 손실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아 부실 기재에 대한 징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등기부상 주인과 실제 주인이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해 주는 '권원보험'도 활성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끊임없는 등기 실수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선 등기관의 등기 실수를 둘러싼 소송이 5건 진행 중이다. 등기관 착각으로 권리관계를 잘못 기재했거나 부동산 사기꾼들이 남의 부동산을 가로채기 위해 위조된 서류를 제출했을 때 등기관이 이를 파악하지 못해 손실을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들이다.
A씨는 수원지방법원 산하 등기소의 등기관이 엉뚱한 사람 이름으로 부동산을 등기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등기신청서에 첨부된 국민주택채권 매입필증과 매도자 인감증명에 분명히 '수원에 사는 B씨'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가 기재됐음에도 등기관이 동명이인인 '용인에 사는 B씨' 이름을 등기부에 잘못 올렸다는 것이다. 이 등기의 부동산을 근거로 '용인에 사는 B씨'에게 1억원을 빌려준 A씨는 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수원에 사는 B씨'가 잘못된 등기임을 알고 부동산을 자기 명의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A씨는 등기신청 대리 법무사와 등기공무원에 대한 감독책임이 있는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시중은행인 S은행은 부동산 전체에 대해 근저당권을 설정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등기관이 부동산 절반에 대해서만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다. 근저당이 설정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경매 배당 순위에서 밀려 채권 2억9250만원을 회수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서울 충정로 소재 대지와 건물을 26억5000만원에 매입한 C씨는 전소유자와 분쟁이 발생해 소유권 이전등기는 말소하고 근저당권 설정등기는 그대로 놔두라는 판결을 받았는데,등기소에서 근저당권 설정등기도 함께 말소해 버려 3억50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전문 부동산 사기꾼인 김모씨는 상속 서류를 위조해 남의 땅(경기도 화성시 소재 임야) 등기를 넘겨 받은 뒤 이를 제3자에게 매각하고 도망을 갔다. 등기관은 등기부상 권리자의 실제 주소를 호적부상의 주소와 비교하는 등 확인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단순히 이름만 확인한 뒤 상속등기를 해줘 결과적으로 이 등기를 믿고 부동산을 매입한 사람에게 1억2000만원의 손해를 입혔다.
◆명의변경 즉시 나온 매물은 주의해야
잘못된 등기의 문제점은 이를 믿고 부동산을 매입한 사람에게 엄청난 재산손실을 입힌다는 데 있다. 진짜 권리자가 나타나면 부동산을 고스란히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가짜 주인은 경제적인 능력이 없거나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 돈을 돌려받을 수도 없다. 물건을 중개한 공인중개사와 국가,법무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데다 돈을 전부 돌려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전문 부동산 사기꾼에게 속은 김모씨 사례의 경우 1심에서 국가와 법무사는 손해액의 40%(4800만원)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김모씨에게도 성급하게 계약을 체결하면서 권리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이 같은 이유로 부동산 등기상 주인과 실제 주인이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손실을 보험으로 처리하는 권원보험을 국가 차원에서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미국 등 상당수 선진국도 등기부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전쟁 때문에 다수가 사망한 나라에선 권리관계가 뒤얽혀 등기에 공신력을 부여하기 어렵다"며 "미국처럼 권원보험을 활성화해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인 최광석 변호사는 "오랜기간 관리되지 않던 부동산이 명의 변경 후 급매물로 나왔다면 전문 사기꾼에 의한 사기 가능성이 있다"며 "미심쩍은 거래는 매수자 스스로 현장탐문 등을 통해 권리관계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