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콘텐츠의 수명은 영원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모나리자'앞 관객은 줄어들지 않고,셰익스피어 독자는 늘어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사후 32년이 지났어도 한 해 500억원 가까이 번다.

국내 방송 5년이 지난 드라마 '대장금'의 힘 또한 갈수록 세진다. 최근엔 생산유발 효과가 1119억원이라는 보고도 나왔다. '겨울연가'를 능가하는 건 물론 단일 드라마 사상 최고라고 한다. MBC의 직접 사업만 계산한 수치로 실제론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됐다.

실제 '겨울연가'의 2005년 한국과 일본에서의 파급효과가 2조3000억원이라면 대장금'의 효과는 3조원이 넘는다는 발표도 있다. 국가브랜드위원회와 지식경제부가 25개 주요 무역 상대국 4214명을 대상으로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휴대폰의 기술력과 김치를 비롯한 한국음식 그리고 '대장금' 등 드라마가 꼽혔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사극'선덕여왕'이 다시 화제다. '선덕여왕'이 '대장금'만한 파괴력을 갖게 될지는 예단할 수 없다. 대장금은 사극 치곤 드물게 평민을 주인공으로 하고 목표 또한 정권 쟁탈이 아닌 음식과 의술 등 전문분야에서의 성공이다. 민족과 국가에 관계없이 보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선덕여왕은 그와 달리 사극의 일반적 소재인 정권 투쟁을 다룬다. 그렇긴 해도 두 드라마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 힘 없던 여자 주인공이 막강한 세력의 조직과 맞서는,이른바 마이너리티의 성공 과정을 다루는 점,성공의 조건으로 여성 간 연대의 중요성과 실력,포기를 모르는 의지와 집념,진실과 믿음,신념의 소중함을 내세우는 게 그것이다.

가슴 아픈 사랑과 같은 편끼리의 갈등,우정과 질투라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에 대한 세심한 천착 또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공감을 얻어내는 요소다. 두 드라마엔 또 치열한 승부와 함께 모든 콘텐츠의 성공 요건인 촌철살인의 대사가 있다. 대장금의 경우 정 상궁과 한 상궁의 대사는 스승의 조언과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을 울린다.

"두려울 게다. 무서울 게야.그러나 약하다 생각하면 동산도 태산으로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강하다 생각하면 돌풍도 한낱 스치는 바람일 뿐이야.그동안엔 내가 너의 바람막이가 되었다만 이젠 네가 태산이 되어야 해.돌풍이 되어야 해."(정 상궁이 한 상궁에게)"네 능력은 뛰어난 데 있는 게 아니라 쉬지 않고 가는 데 있다. "(한 상궁이 장금에게).

선덕여왕 역시 마찬가지다. 가야계 유민들한테 잡혀 노예로 팔려가게 된 덕만(훗날 선덕여왕)은 비를 내리게 하겠다고 장담하고 천명(덕만의 언니)이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느냐고 묻자 답한다. "뭐라도 해봐야지.그냥 앉아서 죽어?"

어린 김유신의 말 또한 상투적인 듯하지만 자신밖에 믿을 곳 없는 이들의 가슴을 찌른다. "진심을 다하면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변한다. 내가 변하면 모든 게 변한다 그렇게 믿고 있다. "(유신)

대중문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희망사항을 담는다. 대장금의 힘은 자신의 힘으로 성공하고 싶은 여성은 물론 괜찮은 스승이나 상사가 사무치게 그립고,학벌과 '빽' 없이 의지와 노력만으로도 성공하기를 바라는 세상 모든 사람의 심정을 대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덕여왕에 대한 높은 관심 역시 기막힌 좌절의 시간들이 이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면 언젠가 그 불행과 역경이 힘이 돼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따른 반응일 게 틀림없다.

현실에선 물론 조직과 싸워 이기기 어렵다. 정보와 지원세력 모두 부족한 까닭이다. 그러나 대장금과 선덕여왕이 보여주듯 누가 뭐래도 자신을 믿고,경쟁자들의 압력과 훼방에 기죽지 않고,최악의 상황에서도 주저 앉지 않고,힘을 키우다 보면 언젠간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