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챔피언은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이다. 강소(强小)기업이라고도 한다. 일반인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특유의 기술과 집중력,의지를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기업이다.

한국경제신문과 중소기업청이 1차로 발굴한 '한국형 히든 챔피언'도 마찬가지다. 글로벌화를 추구하는 기업과 전체 인력의 40%를 연구 · 개발(R&D)에 투입하는 기업,30년 넘게 한우물만 판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형 히든챔피언에는 특별한 게 있다

1차로 선정된 한국형 히든 챔피언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목표로 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분야를 선택해 한우물을 팠다. 자기 분야에서 1위가 되기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했다.

이들의 글로벌화 수준은 수출액만 봐도 알 수 있다. 22개 기업이 작년 한 해 동안 수출한 금액은 4조582억원에 달한다. 매출(5조2034억원)의 78%를 차지한다. 시몬느와 노브랜드 등 5개 기업은 100% 수출 기업이다. 코아로직 등 4개 기업의 수출 비중도 90%를 넘는다.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뉴욕만 220번 방문했을 정도로 글로벌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R&D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로 '일가'를 이뤘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디지털 비디오 레코더(DVR) 생산 업체인 아이디스는 GE 소니 보쉬 등을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업체다. 비결은 R&D 투자 및 글로벌화다. 이 회사는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한다. 전체 직원의 45%는 R&D 인력이다. 이 중 석 ·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45%에 달한다.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업종에 투자,흔들리지 않고 한우물만 판 업체도 돋보인다. 유닉스전자는 1978년 설립 이후 오로지 헤어드라이어 하나에만 매달렸다. 흑인과 백인 등 인종별 머리결에 걸맞은 드라이기를 만들기 위해 기술연구소와 디자인연구소도 설립했다. 캐릭터 완구시장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오로라월드도 1985년 설립 이후 완구라는 한우물만 파 왔다.


◆어떻게 선정했나

히든 챔피언은 헤르만 지몬 런던 비즈니스스쿨 교수가 처음 도입한 개념이다. 지몬 교수는 △매출이 40억달러 이하이고 △세계시장 점유율이 3위 이내이거나 각 대륙 시장 점유율이 1위이며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을 히든 챔피언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런 히든 챔피언이 세계적으로 2000여개 된다는 게 지몬 교수의 분석이다.


이번에 발굴한 한국형 히든 챔피언은 이보다 조건을 완화했다. 구체적으론 △연간 수출액 3000만달러 이상 △수출 비중 50% 이상 △세계시장 점유율 10위 이내 △매출 대비 R&D 투자 규모 5% 이상인 업체를 대상으로 했다. 수출 부문을 비중있게 본 것은 글로벌화가 어느 정도 진전됐는지와 국가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기준에 다소 미치지 못한 업체를 포함한 것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업체를 발굴해 진정한 히든 챔피언으로 육성하자는 취지에서다.

중소기업청은 해당 업체 관계자들을 일일이 면담해 회사 상황을 파악했다. 이 과정을 거쳐 글로벌화와 진정한 혁신 의지가 있는 기업을 추려냈다. 중소기업청은 이들 히든 챔피언에 대한 제도적 지원 방안을 조만간 확정해 시행할 예정이다.


◆왜 히든 챔피언인가

세계에서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독일이다. 2000년만 해도 미국(점유율 12.1%)이 1위였다. 그렇지만 2007년엔 독일(9.5%)이 미국(8.3%)을 앞질렀다. 비결은 한 가지다. 강력한 중소기업이다. 지몬 교수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 히든 챔피언 중 3분의 2인 1300여개가 독일 기업이다. 이들 히든챔피언은 독일 전역에 산재해 있으면서 독일을 먹여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도 비슷하다. 이들 나라의 인구는 한국의 3분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 점유율은 네덜란드 4.0%,벨기에 3.1%로 한국(2.7%)보다 높다. 강력한 히든 챔피언 덕분이다.

2000년 이후 한국 대기업의 성장은 눈부셨다. 조선 반도체 TV 휴대폰 등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한국의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은 그대로다. 2000년에도 2.7%였고 2007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5년간 대기업 수출은 125% 늘었다. 반면 중소기업 수출 증가율은 45.3%에 그쳤다. 한국이 해외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중소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배경이다.

중소기업청은 한국형 히든 챔피언 1000개를 육성한다면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작년 말 11위에서 8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했다.

히든 챔피언의 글로벌화는 고용 창출에도 기여한다. 디에스엘시디의 경우 설립 초기인 2000년엔 종업원이 163명에 불과했으나 작년 말엔 1184명으로 늘어났다. 미국 유명 백화점에 의복을 주문자설계생산(ODM) 방식으로 수출하는 노브랜드도 생산직을 제외하고도 4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김현예/임기훈/손성태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