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부자감세론에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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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재정경제부를 취재하던 2001년 9월,정부는 소득세 인하를 발표했다. 2002년부터 최저 소득세율을 10%에서 9%로 낮추고 최고 소득세율도 40%에서 36%로 인하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10%씩 동등하게 줄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소득세 인하를 주도한 인물은 김진표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과 이용섭 당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이었다. 이들은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들이다.
그로부터 7년여 뒤 감세정책을 들고 나온 이명박 정부는 '부자감세(減稅)'공세에 흔들리고 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부자감세론에 이미 포획된 것 같다. '상속세 · 증여세 인하'는 한나라당 내에서 아예 없었던 일이 돼 가고 소득세와 법인세율 인하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실상 부자감세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들이다. 소득세의 경우 저소득층의 세부담을 25%(8%→6%)깎아준 반면 고소득층의 세부담은 6%(35%→33%)가량 덜어주는 수준에 불과하다. 최고 소득세율을 아예 폐지했던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의 감세정책에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 김대중 정부의 2002년 세금인하에 비하더라도 고소득층 감세폭은 미미하다.
상속세 · 증여세 인하방안도 '부자감세'라 불리기에는 쑥스럽다. 노무현 정부 때 시가의 30%에 불과했던 상속재산의 공시가격을 70~80%로 높이면서 생긴 급격한 세부담 증가분을 덜어내는 정도다. 노무현 정부는 중산층과 서민층이 부담하는 재산세의 경우 공시가격 현실화에 맞춰 순발력있게 과표(과세표준액)구간을 늘리고 세율도 인하했지만 부자들이 주로 내는 상속세와 증여세는 방치했다. 그 결과 엄청나게 늘어난 상속 · 증여세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된 기업주들이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상속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골몰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종합부동산세도 다를 게 없다.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보유세 최저세율과 최고세율 간 격차를 20배로 만들어놓은 것을 10배 수준으로 완화했을 뿐 형평성 있는 세제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지분 쪼개기가 가능한 부동산에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집값에 비례해 세금이 늘어나는 '단일세율'을 채택하고 있다.
법인세의 경우 대주주는 이중과세방지 조항에 따라 적게 낸 법인세만큼 개인소득세 납부 단계에서 세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세금인하 혜택은 소액주주와 소비자들에게 주로 돌아간다. 법인세 인하로 기업투자가 활발해지고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데도 부자감세 논란에 휘말려 시행 연기가 검토되고 있다.
세금은 '소득'에 매기는 것이지 '부자'라는 이유로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부자에게 세금을 징수하더라도 실질적인 세부담이 누구에게 귀결되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부자감세론에 동화됐고 이제는 '서민감세'의 전도사가 되려 하고 있다. 정작 서민들은 낼 세금이 거의 없어 감면받을 것조차 없고,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자리인데도 말이다. 세부담을 줄여 민간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고,기업들의 더 많은 투자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 빈부격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감세 철학의 근본 취지를 집권여당은 까맣게 잊은 것 같다.
현승윤 <경제부 차장 hyunsy@hankyung.com>
그로부터 7년여 뒤 감세정책을 들고 나온 이명박 정부는 '부자감세(減稅)'공세에 흔들리고 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부자감세론에 이미 포획된 것 같다. '상속세 · 증여세 인하'는 한나라당 내에서 아예 없었던 일이 돼 가고 소득세와 법인세율 인하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실상 부자감세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들이다. 소득세의 경우 저소득층의 세부담을 25%(8%→6%)깎아준 반면 고소득층의 세부담은 6%(35%→33%)가량 덜어주는 수준에 불과하다. 최고 소득세율을 아예 폐지했던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의 감세정책에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 김대중 정부의 2002년 세금인하에 비하더라도 고소득층 감세폭은 미미하다.
상속세 · 증여세 인하방안도 '부자감세'라 불리기에는 쑥스럽다. 노무현 정부 때 시가의 30%에 불과했던 상속재산의 공시가격을 70~80%로 높이면서 생긴 급격한 세부담 증가분을 덜어내는 정도다. 노무현 정부는 중산층과 서민층이 부담하는 재산세의 경우 공시가격 현실화에 맞춰 순발력있게 과표(과세표준액)구간을 늘리고 세율도 인하했지만 부자들이 주로 내는 상속세와 증여세는 방치했다. 그 결과 엄청나게 늘어난 상속 · 증여세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된 기업주들이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상속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골몰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종합부동산세도 다를 게 없다.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보유세 최저세율과 최고세율 간 격차를 20배로 만들어놓은 것을 10배 수준으로 완화했을 뿐 형평성 있는 세제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지분 쪼개기가 가능한 부동산에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집값에 비례해 세금이 늘어나는 '단일세율'을 채택하고 있다.
법인세의 경우 대주주는 이중과세방지 조항에 따라 적게 낸 법인세만큼 개인소득세 납부 단계에서 세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세금인하 혜택은 소액주주와 소비자들에게 주로 돌아간다. 법인세 인하로 기업투자가 활발해지고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데도 부자감세 논란에 휘말려 시행 연기가 검토되고 있다.
세금은 '소득'에 매기는 것이지 '부자'라는 이유로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부자에게 세금을 징수하더라도 실질적인 세부담이 누구에게 귀결되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부자감세론에 동화됐고 이제는 '서민감세'의 전도사가 되려 하고 있다. 정작 서민들은 낼 세금이 거의 없어 감면받을 것조차 없고,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자리인데도 말이다. 세부담을 줄여 민간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고,기업들의 더 많은 투자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 빈부격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감세 철학의 근본 취지를 집권여당은 까맣게 잊은 것 같다.
현승윤 <경제부 차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