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속개된 지난 13일 오후 7시30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천 후보자에게 금융자료 제출을 요구했다가 '실정법상 비밀 영역이라 제출할 수 없다''자료가 없다''법무부 소관이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한 A의원은 "참담하다"고 말했다. B의원도 "청문회 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청문회에 왜 온거냐"며 흥분했다.

유선호 법사위원장이 발언 기회를 주자 천 후보자는 "(동생으로부터 받은) 5억원은 수표라 금융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3억원도 처가 (처형으로부터) 수표로 받았기 때문에 자료가 없다. 박모씨로부터 받은 돈(15억5000만원)도 수표로 받아 집주인에게 바로 전달해 자료가 없다"고 해명했다.

오전과 오후 질의 때 천 후보자의 "찾아보겠다"는 답변에 자료 제출을 내심 기대했던 의원들은 뒤통수를 맞기나 한 듯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상황이 이쯤되자 앞서 질의 때 "그래도 이만하면 청렴한 편"이라며 옹호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목소리를 높이며 천 후보자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천 후보자는 자신의 '재정적 스폰서'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모씨와의 해외 골프여행 등 모든 의혹에 대해 "기억에 없다" "그런 게 아니다"고 피해갔다. 유일하게 인정한 부분이라면 "결과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는 말과 자녀들 위장전입 정도였다.

천 후보자의 금융거래 의혹은 어떤 점에서 '박연차 게이트'와 닮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에게 돈을 조달했다는 점이 그렇다. 대가성을 규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수표를 주로 사용했다는 천 후보자의 해명을 듣자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애용했던 달러가 떠오른다.

천 후보자 입장에선 개인 간 채권채무 관계를 이런 식으로 몰고가는 데 대해 억울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 후보자의 석연찮은 태도가 의혹을 눈덩이처럼 불린 꼴이 됐다. 천 후보자는 "피의자가 후보자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검사가 가만 놔두겠느냐"라는 질의에 "상황에 따라 판단을 달리해야 하지 않나"고 말했다. 자칫 '내가 하면 로맨스,남이 하면 불륜'으로도 들릴 수 있는 자기모순이다. 어쩌면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의 서슬퍼런 칼날에 줄줄이 기소된 피의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해성 사회부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