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사의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천 후보자의 도덕성 문제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는 전날까지만 해도 기류가 엇갈렸지만 갈수록 여론이 악화되자 자진 사퇴 불가피 쪽으로 급속히 무게중심이 쏠렸다. 유럽 순방을 마치고 이날 귀국한 이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호우대책을 점검한 뒤 곧바로 청와대에서 정정길 실장과 이동관 대변인으로부터 관련 상황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정무수석실과 민정수석실이 각각 작성한 천 후보자 관련 보고서를 읽었다. 정무수석실은 '즉각 교체'를 건의한 반면 민정수석실은 조금 더 민심의 추이를 지켜보자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고심을 거듭하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조차 교체 목소리가 높아지고 여론도 더 악화되고 있다는 보고가 속속 들어오자 정 실장，맹형규 정무수석，정동기 민정수석，이 대변인과 긴급 회의를 갖고 천 후보자 문제를 숙의한 끝에 오후 8시께 교체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대통령은 이 대변인이 천 후보자의 일본 골프 외유 의혹이 천 후보자의 거듭된 부인과는 달리 사실로 확인됐다고 보고하자 "거짓말하면 안 되지.안 되겠구만…"이라며 내정을 철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반하는 것은 곤란한 게 아니냐.고위 공직자를 지향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처신이 모범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천 후보자가 이 대통령이 교체 의사를 굳힌 지 30분 정도 지나 사의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뜻'이 먼저 전달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청문회를 한 지 하루 만에 천 후보자를 서둘러 사퇴토록 한 것은 이 문제를 끌 경우 최근 적극 부각시키고 있는 '서민 행보'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불거진 '부자 정권'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331억원 재산 기부를 단번에 날릴 수 있는 사안"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8 · 15를 기점으로 정권 중반기 국정 운영에 탄력을 붙인다는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한편 천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개각이 앞당겨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천 후보자의 조기 사퇴는 인사 개편의 걸림돌을 조속히 제거한다는 의미가 담겼다는 점에서 내각과 청와대의 중폭 이상 개편 가능성이 거론된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났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미 현 정부 출범 초기 장관 후보자 3명과 청와대 수석 내정자 1명이 낙마하는 파동을 겪었다. 1년5개월이 지났음에도 검증 시스템은 여전히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천 후보자는 최소 세 차례 이상 검증 절차를 거쳤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천 후보자로부터 정보제공동의서를 받아 기본적인 재산 현황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는 정 실장과 청와대 수석들의 평가를 거쳤다. 다시 민정수석실은 고강도 정밀 검증을 실시했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를 초래한 데 대해 책임론이 일고 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