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히든 챔피언을 키우자] ③ 이오테크닉스 성공 비결… 끊임없는 R&D의 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제품 내놓을때마다 '세계 최초'
③ 기술과 사람에 투자하라
③ 기술과 사람에 투자하라
성규동 이오테크닉스 사장(52)은 '레이저 맨'이다. 철들 때부터 레이저 생각만 해 왔고 레이저로 세계를 정복했다. 레이저로 안 되는 게 없다고 굳게 믿을 정도로 레이저 사랑이 극진하다. '레이저 조각,레이저 수술,레이저 예술…' 등 레이저 자랑은 끝도 없다.
이오테크닉스의 260명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레이저 마니아들이다. 이들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낸 레이저 장비는 많다. 펜 타입의 반도체 레이저 마킹 장비,LCD(액정표시장치) 레이저 트리밍 장비,반도체의 실리콘 웨이퍼 단계에 사용되는 레이저 마킹 장비 등이 이들에 의해 세계에 선보인 제품들이다.
이 덕분에 이오테크닉스는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는 세계 제1의 레이저 장비업체로 등극했다. 레이저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매년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은 성과다.
◆다세대 주택에서 이룬 세계 1위의 꿈
반도체 칩은 새끼 손톱보다 작다. 이 작은 칩에 일련번호와 회사 로고 등이 적혀 있다. 웬만한 기술이 아니면 새겨 넣기 힘들다. 이오테크닉스는 반도체 칩에 레이저로 글씨를 새겨 넣는(레이저 마킹) 장비를 개발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전 세계 반도체 회사의 절반가량이 대당 3억원이 넘는 이오테크닉스의 제품을 구입한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잘나갔던 건 아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중공업 기술연구소에 근무하던 성 사장이 회사를 차린 건 1989년.말만 회사였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 주택 2층에 자리 잡은 연구실 겸 주거지가 전부였다.
이 곳에서 성 사장 등 3명이 3년 넘게 뒹굴었다. 레이저에 관한 한 자신 있던 그들이었지만 기존 업체를 뚫기엔 중과부적이었다. 이미 보급된 등사기 타입의 반도체 마킹 장비를 업그레이드해 시장을 개척하려고 했지만 기존 제품과 차별화하기 힘들었다.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 성 사장 등은 레이저 부품을 수입해 팔아 '연명'하면서 줄곧 신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볼펜으로 글씨를 쓰듯 반도체에 레이저로 글씨를 쓰자'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성과는 4년 뒤인 1993년 나타났다. 마침내 펜 타입의 레이저 마킹 장비를 개발한 것.펜 타입은 종전의 등사기 타입과 질적으로 달랐다. 정확성이 뛰어났다. 초당 1000자를 새겨 넣을 수 있어 속도도 빨랐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장비의 출현은 이 시장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이오테크닉스가 이 시장의 절대 강자로 우뚝 선 것은 물론이었다.
성 사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반도체의 원료가 되는 실리콘 웨이퍼 단계에서부터 일련번호와 회사 로고 등을 새겨 넣는 장비를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장비는 2005년 현실화됐다. 이 분야 터줏대감이었던 일본 업체들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사람과 기술에 투자한다
성 사장은 '서 있으면 죽는다'는 말을 곧잘 한다. 반도체 기술이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를 뛰어넘어야 회사가 살 수 있다는 뜻에서다.
LCD용 레이저 장비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2000년대 초반 반도체에서 LCD 분야로 사업을 넓히기로 했지만 LCD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혼자 힘으론 아무래도 어려웠다.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임직원들의 40%를 R&D 인력으로 채웠다. 그 중 절반은 석사와 박사급 인재들로 뽑았다. 작은 기업이라 처음엔 인재를 뽑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오테크닉스는 레이저 사관학교라더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인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R&D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매출의 10%를 딱 잘라 R&D에 쏟아부었다. 시장이 악화돼 돈줄이 말랐을 때도 이 원칙을 고수했다. 일부에서 "미쳤다"고 수군거렸지만 '투자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이 더 강했다.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의 결과는 2004년부터 나왔다. LCD 화면을 조절할 수 있는 전극을 레이저로 미세 절단하는 장비인 LCD 레이저 트리밍 장비를 개발해 낸 것.기존 LCD 생산 과정에는 없던 신개념의 장비였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는 곧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작년에만 이 장비를 팔아 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덕분에 회사 매출은 작년 1000억원을 넘어섰다. 반도체 레이저 마킹 분야뿐만 아니라 레이저 장비 부문에서 세계 1위에 오르게 된 동력이기도 했다.
◆눈물의 해고와 재고용
어려움도 있었다. 작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반도체 및 LCD 경기가 미끄럼을 탔다. 이오테크닉스도 휘청거렸다. 결국 성 사장은 눈물을 머금고 임직원 50명을 내보내야 했다. 3개월치 월급을 쥐어 줬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모두 내 잘못'이란 생각에 밤잠을 못 이뤘다.
지난 3월부터 상황이 나아졌다. 중국 LCD 업체들로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30%씩 뛰기 시작했다. 성 사장은 곧바로 전에 내보냈던 임직원 20명을 불러들였다. 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경영자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만큼 앞으론 쉽게 사람을 버리지 않겠다"고.
이오테크닉스가 준비하고 있는 야심작은 DDR3 반도체에 사용되는 레이저 마크 장비.이미 개발을 끝내 놓고 반도체 라인 증설만을 기다리고 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함께 태양광 전지(솔라 셀)용 장비 개발에도 나섰다.
이오테크닉스에 있어서 기술이란 무엇일까. 성 사장의 답은 간단했다. "기술은 회사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입니다. " 세계 경기가 흔들리며 굴지의 반도체 회사들이 적자에 허덕일 때에도 이오테크닉스는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다름 아닌 기술의 힘이었다. 성 사장은 "이젠 기술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끊임없는 기술 투자로 세계 최고 자리를 고수하겠다"고 자신했다.
안양=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
이오테크닉스의 260명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레이저 마니아들이다. 이들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낸 레이저 장비는 많다. 펜 타입의 반도체 레이저 마킹 장비,LCD(액정표시장치) 레이저 트리밍 장비,반도체의 실리콘 웨이퍼 단계에 사용되는 레이저 마킹 장비 등이 이들에 의해 세계에 선보인 제품들이다.
이 덕분에 이오테크닉스는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는 세계 제1의 레이저 장비업체로 등극했다. 레이저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매년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은 성과다.
◆다세대 주택에서 이룬 세계 1위의 꿈
반도체 칩은 새끼 손톱보다 작다. 이 작은 칩에 일련번호와 회사 로고 등이 적혀 있다. 웬만한 기술이 아니면 새겨 넣기 힘들다. 이오테크닉스는 반도체 칩에 레이저로 글씨를 새겨 넣는(레이저 마킹) 장비를 개발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전 세계 반도체 회사의 절반가량이 대당 3억원이 넘는 이오테크닉스의 제품을 구입한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잘나갔던 건 아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중공업 기술연구소에 근무하던 성 사장이 회사를 차린 건 1989년.말만 회사였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 주택 2층에 자리 잡은 연구실 겸 주거지가 전부였다.
이 곳에서 성 사장 등 3명이 3년 넘게 뒹굴었다. 레이저에 관한 한 자신 있던 그들이었지만 기존 업체를 뚫기엔 중과부적이었다. 이미 보급된 등사기 타입의 반도체 마킹 장비를 업그레이드해 시장을 개척하려고 했지만 기존 제품과 차별화하기 힘들었다.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 성 사장 등은 레이저 부품을 수입해 팔아 '연명'하면서 줄곧 신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볼펜으로 글씨를 쓰듯 반도체에 레이저로 글씨를 쓰자'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성과는 4년 뒤인 1993년 나타났다. 마침내 펜 타입의 레이저 마킹 장비를 개발한 것.펜 타입은 종전의 등사기 타입과 질적으로 달랐다. 정확성이 뛰어났다. 초당 1000자를 새겨 넣을 수 있어 속도도 빨랐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장비의 출현은 이 시장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이오테크닉스가 이 시장의 절대 강자로 우뚝 선 것은 물론이었다.
성 사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반도체의 원료가 되는 실리콘 웨이퍼 단계에서부터 일련번호와 회사 로고 등을 새겨 넣는 장비를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장비는 2005년 현실화됐다. 이 분야 터줏대감이었던 일본 업체들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사람과 기술에 투자한다
성 사장은 '서 있으면 죽는다'는 말을 곧잘 한다. 반도체 기술이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를 뛰어넘어야 회사가 살 수 있다는 뜻에서다.
LCD용 레이저 장비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2000년대 초반 반도체에서 LCD 분야로 사업을 넓히기로 했지만 LCD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혼자 힘으론 아무래도 어려웠다.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임직원들의 40%를 R&D 인력으로 채웠다. 그 중 절반은 석사와 박사급 인재들로 뽑았다. 작은 기업이라 처음엔 인재를 뽑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오테크닉스는 레이저 사관학교라더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인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R&D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매출의 10%를 딱 잘라 R&D에 쏟아부었다. 시장이 악화돼 돈줄이 말랐을 때도 이 원칙을 고수했다. 일부에서 "미쳤다"고 수군거렸지만 '투자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이 더 강했다.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의 결과는 2004년부터 나왔다. LCD 화면을 조절할 수 있는 전극을 레이저로 미세 절단하는 장비인 LCD 레이저 트리밍 장비를 개발해 낸 것.기존 LCD 생산 과정에는 없던 신개념의 장비였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는 곧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작년에만 이 장비를 팔아 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덕분에 회사 매출은 작년 1000억원을 넘어섰다. 반도체 레이저 마킹 분야뿐만 아니라 레이저 장비 부문에서 세계 1위에 오르게 된 동력이기도 했다.
◆눈물의 해고와 재고용
어려움도 있었다. 작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반도체 및 LCD 경기가 미끄럼을 탔다. 이오테크닉스도 휘청거렸다. 결국 성 사장은 눈물을 머금고 임직원 50명을 내보내야 했다. 3개월치 월급을 쥐어 줬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모두 내 잘못'이란 생각에 밤잠을 못 이뤘다.
지난 3월부터 상황이 나아졌다. 중국 LCD 업체들로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30%씩 뛰기 시작했다. 성 사장은 곧바로 전에 내보냈던 임직원 20명을 불러들였다. 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경영자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만큼 앞으론 쉽게 사람을 버리지 않겠다"고.
이오테크닉스가 준비하고 있는 야심작은 DDR3 반도체에 사용되는 레이저 마크 장비.이미 개발을 끝내 놓고 반도체 라인 증설만을 기다리고 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함께 태양광 전지(솔라 셀)용 장비 개발에도 나섰다.
이오테크닉스에 있어서 기술이란 무엇일까. 성 사장의 답은 간단했다. "기술은 회사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입니다. " 세계 경기가 흔들리며 굴지의 반도체 회사들이 적자에 허덕일 때에도 이오테크닉스는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다름 아닌 기술의 힘이었다. 성 사장은 "이젠 기술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끊임없는 기술 투자로 세계 최고 자리를 고수하겠다"고 자신했다.
안양=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