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우리가 별 수 있겠습니까. 죽을 각오로 맞서야죠."(민주당 A의원)

"이건 정치가 아니다. 한쪽이 죽어야 다른 한쪽이 산다고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한나라당 B의원)

여 · 야가 불안한 본회의장 동거에 들어갔다. 오는 24일 끝나는 6월 임시국회 회기 안에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하려는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동시에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평소 합리적 온건파로 알려진 한나라당 초선 B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대선불복증'이라고 비판하면서 "3년 뒤 우리가 (대선에서) 진다해도 이런 상황이 재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야가 바뀔 때마다 국회를 '전쟁터'로 만든다는 개탄이었다.

상황이 이쯤되자 김형오 국회의장은 양당 원내대표에게 "너무 소모적이니까 둘다 일요일까지 각각 10명씩만 남기고 퇴장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요지부동이다. 이미 지난 13일 미디어법 관련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26개 미디어법안을 상정했기 때문에 민주당은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우제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안 나가면 민주당도 못 나간다"며 "한나라당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열흘 동안 계속 점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본회의는 이미 여 · 야간 합의된 '원-포인트 본회의'였다. 레바논 파병 동의안을 비롯해 국회 운영위원장 교과위원장 예결위원장 윤리위원장 등 4명의 신임위원장 선출건만 처리하기로 합의한 뒤 여 · 야 276명의 의원들이 이날 본회의에 참석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야는 모두 이날 오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본회의장 산회 후 점거키로 하는 등 '신사협정'을 깨기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이미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팽배하다는 방증이다.

아슬아슬한 동거를 시작한 여 · 야 의원 60여명은 이날 오후 본회의장에서 낮잠을 자거나 웹서핑을 즐기는 등 시간 때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근대다가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고 심각하게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한 편의 정치코미디인 이들의 동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민지혜 정치부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