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올리는 학교 따로 있고 떨어뜨리는 학교 따로 있다?'

우스운 이야기같지만 주택 시장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14일 자율형사립고(자사고)로 지정된 서울 시내 13개 고등학교 주변 일부에서는 아파트 주민들이 매매호가를 올리고 매물을 거둬들였다.

반면 전문 기술자를 양성하는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인천의 청라지구에 유치하려는 인천시교육청은 청라지구 분양 계약자들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에서는 한 실업계 고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다가 이름을 바꿔 간신히 살아남았다. 나라의 미래라는 교육보다 자기집 집값부터 신경쓰는 부동산 시장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자율형사립고 효과

지난 14일 강동구 고덕 주공아파트 3단지의 53㎡형을 사기 위해 폭우를 무릅쓰고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았던 A씨는 헛걸음을 했다. 집주인이 갑자기 매매가를 4000만원 올려 달라고해 계약이 무산된 것이다. 인근에 있는 배재고가 자사고로 지정된 게 이유였다.

매매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집값이 조금 오르면서 계약 시점에 집주인이 매도가를 올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높게 부른 건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송파구 오금동에서는 한 달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역 내에 하나밖에 없는 고등학교인 보인고가 자사고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매물이 줄어들고 호가가 올라간 것이다.

현지 삼성공인 관계자는 "자사고 유치 소식이 나돌고부터 매도자가 계약 시점에 호가를 올려 계약이 무산되는 경우가 한 달 사이에만 3,4건 있었다"고 전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미분양이 많았던 고양 식사지구의 경우에도 지구 내 자율형사립고 유치 추진 소식이 아파트 계약률을 올리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면서 "실질적으로 얻는 것보다 심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좋은 학교가 들어오는 것은 수요자들에게 해당 지역의 인프라 자체가 개선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혐오시설?

반면 실업계 고등학교는 인근 집값에 부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으로 인식돼 입지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 청라지구 입주를 추진했다가 분양 계약자들의 반발에 부딪친 인천 마이스터고가 단적인 예다.

인천시교육청은 청라지구에 있는 초등학교와 인문계고등학교 부지를 합쳐 최근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인천 전자공고를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청라지구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입주 예정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토지공사 청라사업단으로부터 부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토공 관계자는 "마이스터고의 청라 입주를 반대하는 입주 예정자들의 민원이 요즘 끊이지 않는다"면서 "예정대로 초등학교가 지어지는 것에 비해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민원 이유"라고 밝혔다.

서울 옥수동에 있는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는 지난해 학교 부지 일부를 새로 개교하는 초등학교에 내주기로 결정하고 학교의 이름과 성격도 서울방송고등학교로 바꾸고서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남산타운 아파트 등 인근 주민들이 주변 슬럼화와 집값 하락을 이유로 이전을 요구했으나 이전 부지도 마땅치 않아 폐교 위협까지 겪은 우여곡절 끝에 나타난 결과다.

현지 B공인 관계자는 "공고가 있던 시절에는 학생들이 떼로 몰려다니고 주민들이 보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탈선 행위를 해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이 많았다"고 말했다.

C공인 관계자는 "올해 들어 남산타운 아파트 시세가 3000만~5000만원 정도 올랐는데 공고가 없어진 게 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교육계 관계자들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로봇랜드 등 산업시설이 들어오는 청라지구에 마이스터고가 들어서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며 "주민들이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루는 과정에도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들이 한몫하지 않았나"고 안타까워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