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사망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성형수술 동기에 대해 함구했다. 자신의 피부가 점점 희어진 이유가 일종의 피부병 때문이라고 했지만,턱이나 코 입술 성형에 대한 의혹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의사학자인 엘리자베스 하이켄의 책 '비너스의 유혹;성형수술의 역사'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새 얼굴'이라는 장(章)이 있을 정도다. "수술로 만든 갈라진 턱,창백한 피부,짙은 화장을 한 그의 모습은 거리에서 흔히 보는 얼굴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흑인이라는 '열등감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로 인해 백인이 되고 싶어 했다거나,자신이 싫어한 아버지로부터의 분리를 열망했다는 등의 심리학적 분석이 그 뒤를 이었다.

어쩌면 마이클 잭슨은 그저 '아름다운 남자'가 되기를 열망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단지 그 기준이 미국 문화가 요구하는 앵글로 색슨계 백인의 모습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끝까지 성형수술을 거부한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경우도 대중들이 그녀의 유대인적인 매부리코까지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에 그것을 용인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작고 약간 들린 백인들의 코 모양에 대한 선호를 그녀가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이상적인 남성상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남성상들이 등장하고 소멸한다. 요즘은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성)이나 토이남(여성적 취향과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남성),품절남(인기가 있지만 결혼했거나 임자가 있는 남성)은 말할 것도 없고,우엉남(김밥에 넣은 우엉처럼 비실비실하고 소심한 남성),베타남(우엉남보다 찌질하지는 않지만 알파걸보다 능력과 신분이 떨어지는 남성),애완남(여성에게 빌붙어 무위도식하는 남성)까지 그 기본 조건은 '꽃미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꽃만큼 아름답지 않으면 여성들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기서 여성의 경제력 향상이라거나,남성들의 치장에 대한 본능을 그 원인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변화는 '젊은 꽃미남'뿐만 아니라 이제는 '꽃중년' 혹은 '미중년'이 대세라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 태봉 역을 맡았던 탤런트 윤상현이다. 그는 '30대의 구준표(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20대 꽃미남)'로 불리면서 성별로는 '남성'으로,연령대로는 '중년층'으로까지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이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백화점에서도 중년층 이상의 고객들이 청바지와 같은,어리게 입고 가꾸는 '다운 에이징(down aging)' 상품들을 예년에 비해 더 많이 구입한단다. 그래서 신사복이나 골프복보다 캐주얼복의 매출 증가율이 더 높단다.

젊어 보인다는 것은 이미 젊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젊어 보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이제는 아름답기까지 해야 한다. 젊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된다. 하기야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마당에 30~40대가 더 이상 중년이 아닌 청년으로 분류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름답다는 것이 이제는 남성들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가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에 있다거나,자기계발이나 생존전략으로서의 성형의학의 필요성에 대해 부르짖는 것은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에 불과한 듯하다. 뚱뚱한 것에서 늙어 보이는 것으로 가난함과 나태함의 상징이 바뀐 듯해서 씁쓸하다. 남성들조차 주름살이 생길까봐 크게 웃지도 못할 테니까.

김미현 <문학평론가ㆍ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