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에 흩어져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한인 화가들은 자신들의 꿈과 현실을 어떻게 표현할까.

1948년 정부 수립 이전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으로 이주했던 한인과 그들의 후손인 2~3세대 작가 31명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아리랑 꽃씨-아시아 이주작가(Korean Diaspora)'전은 불가피하게 타국에서 살아야 했던 코리안 디아스포라(離散)작가들의 문화 코드와 예술성을 살펴보고 시장성까지 확인하는 자리다.

일본의 한인 작가들은 주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스스로를 '일본에 거주하고 있지만 정착되지 않은 상태'인 재일(在日)작가라고 생각하는 만큼 현실적인 민족차별 문제를 화면에 담아낸다.

김영숙씨(35)의 '쌀'은 아시아 각국에서 생산되는 여러 종의 쌀 낟알을 늘어놓거나 하나로 합하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모두 다른 품종을 한데 모아놓으면 어떤 쌀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것처럼 일본인과 한국인의 구별 또한 무의미한 것임을 상징한다.

두루마리 휴지에 북한과 남한의 여권 표지를 인쇄한 작품을 내놓은 김애순씨(33) 역시 국적을 구분 짓는 여권이 한낱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 베트남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절망과 아픔을 묘사한 백령씨의 '이 아이의 아비를 돌려달라'도 눈길을 끈다.

반면 중국 한인 작가들은 중국 소수민족정책에 순응하며 인물화 작업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물을 통해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과장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1984년 전국미술전람회 우수상을 받은 임천(1936~2008년)의 '소방울',한 노인을 통해 한인생활의 허무함을 표현한 이귀남의 '홍의 노인',물방울 속에 갇힌 채 부유하는 사람들을 그린 박광섭씨의 회화,회색 배경 속에 짓눌린 여인의 모습을 그린 김우씨의 작품은 개혁개방 이후 과도기적 시대상을 반영했다.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정체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러시아 레핀대학 교수이자 북한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변월룡씨,'진혼제' 연작을 통해 한인들의 비극적인 사건을 묘사한 신니콜라이,소련 해체 이후 공산주의 붕괴에 대한 도덕적 실망과 불안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김세르게이의 작품이 처연하게 다가온다.

배순훈 관장은 "이번 전시는 다문화사회로 변모하는 국내 상황을 감안해 각기 다른 수난과 영광의 유민사를 통해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고 포용의 사회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하는 취지에서 기획했다"고 말했다. 9월27일까지.입장료 3000원.(02)2188-60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