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陝西)성의 성도 시안(西安)에서 3m 깊이의 땅을 파면 당나라 유물이,5m를 파면 한나라 유물이,9m를 파면 진나라 유물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명나라 초기까지 장안(長安)이라고 불리던 3100년 역사의 고도 시안.1100년간 중국 13개 왕조의 도읍지였으며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의 출발지였다. 중국대륙 한가운데 위치해 중원(中原)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호령하였다. 그런 시안에 가면 진시황(秦始皇)을 만날 수 있다.


Take 1 2천년 잠에서 깨어난 병마

1호용갱 안에 들어서자 자욱한 흙냄새가 시야를 가렸다. 수천년간 먼지로 분화된 살아 있는 사람 냄새 같았다. 눈을 뜨자 소름이 돋았다. 그때였다. 수천의 병마들이 흙먼지를 툭툭 털며 내게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플래시를 연방 터트리며 뒷걸음질칠 때마다 2000년 전 황제의 무덤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타임머신을 돌려보자.진시황(기원전 259~210년)은 자신의 무덤인 여산(驢山)에서 1.5㎞ 떨어진 지하통로에 병마들을 세워 사후세계를 지키게 했다. 동서 길이가 230m 너비가 62m인 1호갱 안에 신장 180㎝ 정도의 기병과 보병 6000여명,32기의 말,8대의 전차를,2호갱 안엔 전차병부대,3호갱 안엔 청동마차에 갑옷을 입은 지휘관 부대를 배치시켰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낸 숫자만 도합 8000여명.

1974년 우물을 파던 세 명의 농부에 의해 우연히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병마용(兵馬俑).지금이라도 살아서 막 걸어나올 듯하다. 자세히 보니 얼굴 표정,옷차림,상투 튼 모습도 제각각이다. 일부는 발굴 도중 훼손되고 목 부위가 없는 채로 순장(?)됐는데 마치 전사자처럼 느껴졌다. 갱내 곳곳에선 발굴작업이 지금도 한창이다. 1979년 중국 정부는 아예 이곳에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을 만들었다.

자동차를 타고 시안에서 동쪽으로 2시간을 달려가니 오른쪽으로 희뿌연 먼지바람 속에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산이 보인다. 화양(華陽)시 남쪽에 위치한 해발 2160m의 화산(華山)은 중국의 5악 중 하나로 꼽힌다. 초고속 케이블카에 몸을 맡기면 북봉 1550m까지는 쉽게 오른다. 위를 보니 깎아지른 듯한 칼날능선이 숨을 멈추게 한다. 등산로를 오르자 대부분 계단이 낮고 일일이 돌을 쪼아 만들었다.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Take 2 불교문화의 진수를 맛보다

소림사(少林寺) 하면 무협지와 리롄제(영화배우 이연걸)가 먼저 떠오른다. 뤄양에서 한 시간 정도 달려오니 소림사를 품은 쑹산(嵩山)은 비구름에 휘감겨 있었다. 상업성이 짙은 무술 공연은 뽀족한 창살 끝에 온몸을 맡기는 차력 이상의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사오린쓰 경내를 둘러봐도 선승은 온데간데 없고 여느 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실망감만 더했다. 해발 1400m의 대선구협곡에서 펼쳐진 선종소림(禪宗少林) 음악대전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날이 저물자 수악,목악,풍악,광악,석악 등 5개 부분으로 나눠 공연하는데 할리우드식 최첨단 조명 속에서 물소리와 바위 심지어 지나가는 바람조차도 무대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인 게 인상적이다.

룽먼석굴은 허난(河南)성의 뤄양시내에서 남쪽으로 13㎞ 지점에 있는데 석회암 암벽에 크고 작은 1342개의 석굴과 10만여개의 불상군이 들어서 있다. 완포둥(萬佛洞)에 이르자 2㎝ 높이의 불상이 벽면에 빼곡하다. 무려 1만5000개나 된다고 하는데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반면에 관능적인 몸매의 관세음보살상은 목이 잘린 채 신음 중인데 유구한 불교 문화의 부침을 되새기게 한다. 여기서 50m쯤 더 가면 펑산쓰(奉善寺)동. 고조의 황후였던 측천무후를 닮았다는 비로자나불(盧舍那佛)은 높이가 17m도 넘는다. 룽먼석굴은 둔황의 모가오굴(莫高窟)과 다퉁의 윈강(雲崗)석굴과 함께 중국의 3대 불교석굴로 알려져 있다.

정저우에서 서북쪽으로 70㎞ 떨어진 차오쭤(焦作)시내에 있는 윈타이산(雲臺山)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적인 지질공원이며 유교 불교 도교가 병존하는 종교적 명산이기도 하다. 붉은 떡시루 같은 돌들이 차곡차곡 쌓인 사이로 2㎞가 넘는 협곡이 이어지는데 이곳이 바로 윈타이산 최고의 관광코스인 홍석협(紅石峽).

이 밖에 담포협,천폭협,자방호 등 볼 만한 명소가 그득하다.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명성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시안·뤄양·정저우=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

Tip

시안(西安)에서 뤄양(洛陽)을 거쳐 정저우(鄭州)에 이르는 중원(中原)여행은 중국속의 진짜 중국을 둘러보는 시간이다. 시안,뤄양,정저우는 중국의 8대 고도(古都)에 속한다. 이들 3개 지역 주변엔 진시황릉,병마용,화청지(華淸池 · 양귀비와 당 현종의 로맨스 장소),비림(碑林 · 역대 명필과 경전을 새긴 3000여개의 비석을 모아놓음),화산,용문석굴,관림(關林 ·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모신 사당),숭산 소림사,운대산(雲臺山) 홍석협 등 그야말로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유적과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대한항공은 지난 5월27일부터 인천~시안 노선을 주5회 운영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3시간 40분~4시간.뉴차이나투어(02-337-8030)에서 4박5일 상품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