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를 둔 가정은 현 건강보험 체계가 암 치료에 대해 많은 보장을 해준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도 막상 의료비 청구서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런저런 비급여 항목에 좀 더 실질적으로 보험체계를 조정해야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달 30일 서민의 의료비 경감을 위해 암 환자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을 현행 10%에서 오는 12월 5%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다른 질환의 본인부담률(통상 입원치료는 20%,외래진료는 40% 선)과 비교하면 암환자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득을 보는 게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약 67만명의 암환자가 연간 1300억원의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고 암 환자가 점차 늘어가는 추세여서 적절하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현재 암 환자들은 과연 전체 진료비의 10%만 부담하고 있는 것일까. 암환자에 대한 복잡한 요양급여비를 따지고 보면 제도와 현실은 큰 차이가 난다.

암 환자 급여비는 크게 요양급여(공단부담금+본인 일부 부담금),법정 비급여,의학적 비급여로 나뉜다.

요양급여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진찰 · 검사비,약제 및 치료재료비,처치 · 수술비,예방 · 재활,입원,간호,이송 등에 소요되는 비용 중 필요성이 인정되는 분야에 대해 보험공단에서 현물로 부담하는 돈이다. 공단이 직접 내는 공단부담금과 과잉진료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막기 위해 일정 부분 가입자가 지출하는 본인 일부 부담금으로 나뉜다. 법정 비급여는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비로 보건복지가족부령으로 요양급여에서 제외한 항목이다. 의학적 비급여(임의 비급여)는 의료기관이 의학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해 적절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 절감에 초점을 맞춘 심사 기준을 초과하거나 식품의약품안전청 허가 사항을 벗어난 약물 투여로 실제 투입된 비용을 보상받지 못함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에게 징수하는 비용을 말한다. 대표적인 게 2006년 12월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이 백혈병환자에게 지나친 임의 비급여를 청구해왔다며 환자단체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진료비 환급 · 환수를 요구당한 사건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7년 집계에 따르면 공단이 부담하는 암 환자의 건강보험보장률(급여율)은 71.5%,법정 본인부담률(본인 일부 부담금)은 8%,비급여 본인부담률(법정 비급여)은 20.5%로 나타났다. 임의 비급여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정부는 암 환자 보장률을 내년에 75%,2015년 80%로 올린다는 보장성 강화계획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시행한 보장성 강화계획 시행 결과 이에 투입된 재원의 27.8%가 암 환자 법정 본인부담금 경감에 쓰였다. 이에 따라 2004년 49.6%에 불과했던 암 환자 급여율은 2005년 61.8%,2007년 71.5%로 대폭 늘었다.

하지만 식대와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의 급여화에 각각 24.3%,8.7%에 해당하는 보장성 강화 재원이 쓰이는 등 무분별하게 수혜 대상자를 늘리다 보니 정작 필수적인 암 치료 항목은 급여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항암제 치료에서 복합요법을 할 경우 보험공단이 제시한 기준에서 한 가지라도 누락되면 전체 항암제가 보험급여를 받지 못한다(갑상선암 2차 치료에서 시스플라틴+독소루비신+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 투여).용량에 대한 규정이 경직적이어서 일정량을 넘거나 부족하면 불법 처방이 된다(위암 환자에서 도세탁셀 투여,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에 대한 면역억제제 투여).항암제를 1차,2차,3차 치료제로 구분하는데 현 규정은 1차와 2차,1차와 3차 치료제를 혼합해 유연하게 쓰는 것을 막고 있다. 또 건강보험재정 절감을 이유로 의학적으로 유효성이 인정되는데도 복합요법 중에서 한 가지만 보험급여를 인정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직접 부담한다. 따라서 모든 보험 가입자에게 식대를 일괄 지급하는 포퓰리즘적 급여정책을 지양하고,유연성 없이 규정을 지키도록 한 '규격진료'를 타파해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의학적 비급여에 대한 보건당국의 입장도 명확하게 정리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는 급여항목을 제한하는 지침이 없다. 지침에 의해 제한되더라도 의사가 의학적으로 필요하다는 소명자료를 제출하면 보험급여가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병원 내 다학제위원회에서 치료 전에 비급여 요법을 승인받도록 하고 있으나 신청 후 답변까지 최대 60일이 걸려 임상현장에서는 대부분의 환자가 임의 비급여로 항암제를 투여받고 있다. 더욱이 제형개량 신제품이나 최신 신약은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됐음에도 일부 근거 자료가 미비해 급여를 인정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와 함께 기관 내에 넣는 튜브 등의 치료재료는 환자의 위생 상태나 고통 경감을 위해 여러번 갈아야 좋으나 건강보험 급여 규정은 이를 제한하고 있다. 의료계는 기본적으로 현행 낮은 건강보험료,저 의료수가,빈약한 건강보험 재정 등 '3저(低)'를 적정 규모로 늘리고 실제 필요한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암 치료 관련 경직된 규정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박상근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