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증권사들이 소액결제 서비스를 시작하면 시중자금의 흐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거래하는 증권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도 자동이체 송금 등의 업무를 자유롭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측면에서 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예금보다 증권사 CMA가 훨씬 높아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소액결제 서비스가 연착륙할 경우 CMA 잔액이 4년 후엔 지금의 3배 수준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CMA 시장이 이미 성숙 단계에 진입하고 있고 CMA 계좌당 잔액이 급증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급격한 자금 이동은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고객예탁금 등 증시 주변의 단기자금 위주로 CMA로 이동할 경우 파괴력은 당초 예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평가다.

◆고금리 매력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CMA 잔액은 38조2768억원을 기록 중이다. 계좌 수는 884만개에 이른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2조원대에 그쳤던 잔액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CMA에 결제 기능을 보강하고 주요 증권사가 마케팅에 적극 나설 경우 CMA로의 자금이동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은준 신영증권 연구원은 "잔액 기준으로 CMA 시장은 지난 3년간 분기 평균 8.4%씩 고성장했다"며 "잔액 증가 속도가 최근 둔화하기는 했지만 소액결제 서비스가 시작되면 분기당 7% 성장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영증권은 이런 추세로 시장이 커질 경우 CMA 잔액은 2013년 3월 말 10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올 3월 말(36조원)의 3배에 이르는 규모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2006년 말부터 2007년 9월까지 요구불예금과 저축예금 등 은행권의 단기수신이 24조원 감소하는 동안 CMA 잔액은 14조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연구원은 "CMA가 은행권 자금을 흡수하는 능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손미지 솔로몬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 수시입출금식 계좌의 금리가 연 0.1%에 불과한 것에 비해 CMA 평균 금리는 연 2.5% 안팎에 이르기 때문에 상품 경쟁력도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110조원에 이르는 머니마켓펀드(MMF) 자금 중 일부가 CMA로 둥지를 옮길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단기간 급격한 이동은 없을 듯

금융권 간 '머니 무브'가 중장기적으로 예상되더라도 단기간에 급격한 자금 '쏠림' 현상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원재웅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형 펀드 잔액이 급증했던 2007년 5월부터 2008년 1월의 경우 은행 예금 잔액이 줄면서 펀드 잔액이 증가했다"며 "하지만 현재 주식형 펀드 규모는 정체 중인 반면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은행 저축성예금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CMA를 기반으로 증권사의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자금이 들어오는 교차판매가 얼마나 활성화될지 여부도 중요한 포인트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아직은 고객예탁금이나 MMF 등 증시 주변 자금만 CMA로 이동하는 데 그치고 있어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원 연구원은 "CMA 주고객의 연령대가 20~30대로 낮은 편"이라며 "지급결제 서비스가 시작되더라도 당장 고액 자산가들이 주로 포진한 중장년층 고객을 유인하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CMA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것도 부담이다. 토러스투자증권에 따르면 CMA 계좌당 평균 잔액은 2007년 6월 700만원에서 최근 450만원까지 감소했다. 25~39세 경제활동인구 1명당 CMA 통장을 하나씩 보유하고 있어 CMA 계좌가 은행계좌를 대체하기보다는 여유자금 투자를 위한 보조통장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는 게 토러스의 분석이다.

금융감독 당국도 증권사의 지나친 경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CMA 편입 채권의 평균 만기를 6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CMA 신용카드 모집 자격을 제휴 증권사 임직원으로 한정하는 내용의 규제 방안을 내놨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감독당국이 CMA 운용 등과 관련해 규제만 강화했다기보다는 사후 감독을 보완해 지급결제 서비스 시행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확대를 미리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자금이동의 속도와 관계없이 증권사 간 고객 확보전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손미지 연구원은 "CMA 자체로는 증권사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계좌로 들어온 자금이 다른 투자상품으로 연결되면 수익 증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손 연구원은 "CMA 신규 계좌의 30% 정도는 적립식 펀드에도 가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CMA 마케팅에 따라 향후 증권사의 자산관리 부문 성장이 크게 영향을 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