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뒤로 빠져야 협상이 될 거 같네요. "(금융노조 관계자)

"경제 사정은 나아졌는데 임단협 상황은 더 어려워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

은행권 노사가 올해 초 마련한 잠정합의안(임금동결+연월차 의무사용분으로 채용확대)이 지난 3월18일 중앙노사위원회에서 부결된 이후 4개월이 흘렀다. 노조는 임금동결을,사측은 임금 5% 삭감(연월차 수당 반납까지 포함하면 10%)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양측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국내 경제사정이 급속하게 호전되면서 노(勞)쪽에 유리하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은행노조 쪽에서 임금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자는 "경제가 연초보다는 안정돼 가고 있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여유를 보였다. 반면 연합회 관계자는 "봄에 비해 경제사정이 나아져 임금협상 여건이 오히려 악화됐다"고 털어놨다. 은행 직원들의 고임금에 대한 정치권과 여론의 비판 여론도 수그러들어 임금을 깎기가 쉽지 않다는 게 사측의 얘기다.

하지만 정부가 금융권 임금을 깎겠다는 입장에서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어 노조 쪽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다가는 노사협상 타결 없이 한 해가 그냥 지나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올해 임금협상이 결렬되더라도 노조로서는 실리든 명분이든 잃을 게 없다. 시중은행의 한 노조위원장은 "올해 임금협상을 못하고 넘어가면 지난해 임금협상 결과(임금동결)를 소급해서 적용하면 된다"며 "금융노조는 급할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잠정합의안을 뒤집은 것은 금융공기업 사측이었다. 당시 노사는 '한시적'으로 초임을 삭감하는 데 잠정 합의했지만 정부의 방침을 따라야 하는 금융공기업들이 '영구 삭감'을 주장,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공기업들은 노조와 협의 없이 초임 삭감을 단행했고,한국노총은 수자원공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금융노조는 "상급단체가 소송을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협상은 곤란하다"며 시중은행들의 한시적 초임삭감도 반대하고 있다.

물론 금융노조에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개별은행 노조들의 '개인 플레이'다. 예컨대 신한은행 노사는 이미 지난 4월 임금을 6% 반납해 중소기업 고용창출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금융노조와의 사전 협의는 없었다.

이 같은 개별 행동이 또 나올 경우 금융노조의 협상력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노조는 국민여론이나 사회 정서도 무시할 수 없다"며 "강성 조합원들과 지도부 내에서는 다소 욕을 먹더라도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