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쉽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60이면 청춘이다. ''인생은 60부터다. ' 현실은 그러나 말같지 않다. 60은커녕 길어야 50대 중후반이면 물러나야 하고 심지어 50세도 안돼 전혀 명예롭지 않은 명예퇴직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 허다한 실정이고 보면 나이는 곧 굴레요 족쇄다.

평생직장은 없으니 인생 이모작에 나서야 한다지만 그게 쉬우면 무슨 문제랴.온갖 시행착오 끝에 얻은 업무 노하우도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알 만하니 기회만 주어지면 한번 제대로 해볼 것 같은데 도전할 때마다 나이에 걸리다 보면 제아무리 자신만만했던 사람도 풀이 죽는다.

톰 왓슨의'브리티시 오픈 골프대회'준우승은 나이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에게 "이까짓 나이쯤" 싶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왓슨은 1949년 9월4일생.우리 나이론 61세,만으로도 60세다. 프로 경력 38년에 PGA투어 우승만 39차례라지만 골퍼의 전성기가 35~36세고,남자의 경우 50세부터 매년 근력이 1.5% 이상 감소한다는 걸 감안하면 분명'슈퍼 노장'임에 틀림없다.

나이를 이기고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슈퍼 노장은 적지 않다. 괴테는'파우스트'2부를 76세에 시작했고, 커넬 샌더스는 62세에 KFC(켄터키프라이드치킨)를 창업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미포만 백사장과 거북선 사진만 들고 세계를 누벼 조선소를 건립해낸 것도 60세가 다 돼서였다.

왓슨은 이번 경기에서 놀라운 체력과 지구력에 더해 침착함과 인내,뛰어난 균형감각,전략적 운영 등 노장만이 지닐 수 있는 무기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끝에 준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일생일대의 우승을 놓쳤음에도 그는 "기회는 또 있을 테고 이번 대회의 열정과 정신력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왓슨은 평소 퍼팅을 잘하자면 '최대한 눈높이를 낮춰 그린의 경사를 두루 읽고 넣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꾸준한 자기 관리에 따른 체력과 정신력,낮은 자세로 주위를 잘 살피는 일과 목표 달성에 대한 확신이 골퍼에게만 요구되는 건 아닐 터이다.

슈퍼 노장들은 한결같이 무모할 만큼 자신을 믿고 실패가 두려워 주저앉지 않았다. 벽은 늘 스스로 의식하는 순간 실제보다 크고 높게 다가선다. "그 나이에"라는 말에 기죽지 말고 대들어볼 일이다. 마흔 안팎에 일자리를 잃은 소장층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의 덫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면 내일은 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