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나. 과다 차입 등 금융위기의 원인은 해소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했는가. 또 다른 시스템 위기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는 적절히 마련되고 있는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6개월을 하루 앞둔 21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75)를 만나 미국 경제의 현 주소와 오바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그는 "미국 경제가 미덥지 않다"고 진단한다. 풀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은데도 오바마 정부가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개혁작업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선 순위를 정하지 않고 많은 문제를 동시에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책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터뷰는 뉴욕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학 빌딩 내에 있는 교수연구실에서 이뤄졌다.

미국 경제가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다.

"실업률이 어느 수준까지 치솟을지가 중요하다. 10%대 중반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문제는 경제가 회복된 이후의 모습이다. 회복의 강도가 더 중요하다. 경기가 살아나도 실업률이 7.5% 수준 이하로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미국 경기 회복은 낚싯바늘을 닮은 J자를 좌우로 돌려놓은 모양의 '역방향 J자' 형태가 될 것이다. 곤두박질쳤다가 급반등하는 듯 하지만 성장이 정체되는 과정을 밟을 것이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가계자산 가치가 줄어 왕성한 소비가 주도하는 예전 같은 거품은 상상할 수 없다. "

'고용 없는 성장' 등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염두에 둔 것인가.

"경제는 스스로 개혁하는 과정을 밟는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 못박기보다는 미국 경제가 10년 혹은 15년 전의 역동성을 갖지 못할 것이란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기를 거치면서 미 경제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벤처산업 쇠퇴,은행 산업 위기(과도한 차입과 부실자산)뿐 아니라 심지어 기업들도 고쳐야 할 게 많다. 매우 취약한 지배구조로 기업이 운영돼 온 것 같다.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보다는 분기 실적에 연연하는 단기 업적주의가 판을 쳤다. 사업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점도 그렇다. 그들은 회사가 잘되기보다는 소송에 휘말리지 않을까를 더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경제가 부활할 수 있겠나. 더 큰 걱정은 워싱턴(오바마 정부와 의회)이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이런 문제들은 적절한 입법 과정을 통해서만 고칠 수 있다. "

경제위기 속에 출범한 오바마 정부로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지나치게 많은 측면이 있는데.

"오바마 정부가 우선 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않고 광범위한 문제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선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결과 경제개혁 측면에서 충분한 의제 설정과 문제해결 노력이 부족했다. "

2차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위기를 다룰 과학적인 지식을 갖긴 어렵다. 쿠키와 마티니를 만드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얘기다. 사안별로 좀 더 현명한 정책 결정을 하길 기대할 뿐이다. 2차 경기부양책에는 반대한다. 엉성하게 마련된 1차 부양책의 효과도 따지기 전에 2차 부양책을 논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저임금자 고용기업에 대한 보조금 제도 같은 것을 적극 도입했어야 했다. "

12개월 뒤 미국 시장 모습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역방향 J자' 형태의 경기회복을 예상한다. 마이너스 성장세에서 벗어나고 기업 수익성도 회복될 것이다. 불확실성도 상당히 걷힐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주가도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내년 말이나 2011년쯤 되면 실망감이 시장에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

최근 미국 가계가 잃어버린 부를 되찾는 데 15년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이는 더 이상의 '거품'은 없을 것이란 추론에 따른 것인가.

"부를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상 버블은 언제든지 다시 빚어질 수 있다. 미국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투기를 적법한 테두리 내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가 체계적인 감독 기능을 강화해 거품 조짐이 보이면 시장에 즉각 개입하길 바라고 있다. "

소비자들이 지갑을 좀체 열지 않고 있다. 이런 소비패턴 변화가 미 경제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꼭 그렇지 않다. 절제 있는 쇼핑과 저축률 증가는 장기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가계가 부유해야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50,60대에 저축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오바마 정부의 금융규제 및 감독체계 개혁 작업은 옳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금융규제 측면에서 오바마 정부가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지 모르겠다. 은행들은 '시가평가회계(mark-to-market)' 등 시장 규제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정부는 파생상품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JP모건체이스 등 일부 은행은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 별도로 거래하길 원한다. 지금까지 시장안정화를 위해 은행들에 무슨 규제를 추가했고 어떻게 강화할지 도대체 알 수 없다. 게다가 정부는 금융사들이 건전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것 아닌가. "

2분기 깜짝실적을 발표한 골드만삭스가 계속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경쟁 은행들이 망하거나 어려움에 처하면서 이익을 본 측면이 있지만 일부 사업부문에서 계속 돈을 벌 것이다. 은행시스템의 가장 큰 실패는 은행이 더 이상 기업의 혁신에 필요한 금융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은행이 기업들에 대출하거나 투자한 게 아니고 가계 소비금융을 지원하거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사업에만 주력해왔다. 금융사가 주택 및 사업용 모기지와 카드론에만 의존해 생존할 수는 없다. 금융시스템이 망가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잉차입,의아스러운 대출이 문제였다. 오류를 반복한다는 측면에서 (서브프라임 사태와) 유사한 문제가 터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금 원유 개발 등에서 버블이 싹틀 수 있다. "

오바마 정부가 재정부담을 줄이면서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려 하고 있는데.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는 경제가 붐을 이루고 자산가치가 엄청 뛰었던 2004,2005년이 적기였다. 그런 경제상황이라면 증세는 합리적인 정책일 수 있다. 하지만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기업혁신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 돈은 부자들의 (위험)투자를 통해 조달된다. 미국 납세 대상자의 50%가 이런저런 공제 혜택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세율이 공정치 못한 탓이다. 물론 가난한 사람에 대한 기초 의료보험이 없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 이런 제도가 없나. 바로 세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왜 세수가 부족하나. 바로 소득자 절반이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

벤 버냉키 FRB의장에 대한 평가는.

"'배드 버냉키','굿 버냉키'가 있다. 금융위기 초반에 상황을 지나치게 안이하게 판단한 것은 잘못했다. 위기 인식 과정에서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후 시장에 적극 개입해 시스템 위기를 막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특히 경기하강의 심각성을 잘 알고 신속하게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했다. "

중국 경제성장이 미국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이다. 중국 경제가 살면 미국 수출이 증가하게 된다. 당연히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중국 등 아시아에서 투자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중국 경상적자는 줄게 된다. 이는 세계 금리를 올리는 결과를 가져와 미국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다. 중국 투자가 늘수록 미국 투자는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1990년대 관련 연구를 통해 검증한 바 있다. "

어려운 시대일수록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세상은 변한다. CEO들에게 6년 전과 지금 경제는 확연히 다르다.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위기에 발을 담그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길 바란다. 한국 기업에도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기회가 많을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에는 항상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소장으로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연구소가 주는 핵심 메시지다. "

이익원 뉴욕 특파원 iklee@hankyung.com



[펠프스 교수는] 실업ㆍ물가 관계 이론적 규명, 200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거시경제 정책의 장 · 단기 효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 '실업과 물가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이론적으로 기여한 공로로 200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합리적,기대론적 미시경제 이론을 고용 결정과 가격 · 임금 동태학 등 거시경제 이론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기대이론을 반영한 필립스커브(물가와 고용 간의 관계)'를 정립했다. 아울러 케인스 경제학이 해결하지 못한 호황기 비자발적인 실업 문제와 총 유효수요의 감소가 왜 실업을 초래하는지 등에 대한 해답도 제시했다. 이 밖에 경제 주체의 물가 상승(인플레) 기대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물가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 등도 마련했다.

1933년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앰허스트대를 나와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민간기업 연구재단 등을 거쳐 1971년부터 컬럼비아대 교수로 재직해왔다. 현재 컬럼비아대 부설 '자본주의와 사회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중산층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1997) △구조적 경기침체(1994) △고용과 인플레 이론의 미시경제학적 토대(197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