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킬 힐(Kill H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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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구두가게에서 뒷굽 7~8㎝짜리 하이힐을 달라고 하면 '구세대' 소리를 듣는다. 이젠 적어도 10㎝는 돼야 하이힐 축에 들기 때문이다. 멋을 좀 낸다는 젊은 여성중엔 12~15㎝짜리를 찾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뒷굽이 10㎝를 넘는 하이힐,이른바 '킬힐(Kill Heel)'이 유행이다. 인터넷 쇼핑몰 G마켓이 상반기 히트상품을 조사한 결과 킬힐이 1위에 오른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쇼핑몰에서만 지난 6개월간 무려 100만여 켤레가 팔려나갔다. '아줌마들'까지 유행에 동참할 정도여서 구두가게는 킬힐을 얼마나 다양하게 갖췄는가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킬힐의 인기 여파로 남성 '키높이 구두'까지 덩달아 잘 팔린단다.
킬힐이 신기에 편한 신발은 아니다. 생긴 모양이야 경쾌해 보이지만 발에는 엄청난 부담을 준다. 신을 때 발 앞쪽에 몰리는 압력이 압력밥솥이 끓어 넘칠 때의 4배에 달한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킬힐이라는 이름도 패션쇼에서 신고 런웨이를 걷다가 넘어지는 모델들이 속출하면서 붙었다고 한다. 의료계에선 킬힐을 자주 신으면 무지외반증(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휘는 증세),척추측만증(허리가 휘는 증세)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행치고는 잔인한 편이다.
그런데도 멋쟁이들이 킬힐에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킬힐을 신으면 몸무게가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몸을 뒤로 젖혀야만 똑바로 설 수 있게 된다.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엉덩이를 바짝 당기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관능적인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다. 힐이 높아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는 데다 키가 커보이는 효과도 있다.
킬힐의 유행을 멋뿐만 아니라 여성 자아의 성장과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당당하고 적극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높아진 위상이 반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슈퍼모델 베로니카 웹이 "하이힐은 그것을 신은 여성을 존경의 대상으로 만든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저런 특징에도 불구하고 킬힐이 몸을 혹사하는 신발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일단 뒷굽이 5㎝ 이상이면 몸에 무리가 간다고 한다. 불가피하게 킬힐을 신더라도 1주일에 2회 이하,하루 2~3시간을 넘지 말라는 게 의사들의 충고다. 멋쟁이가 되려면 어느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지만 매력에 너무 집착하다가 발이나 허리가 뒤틀리는 사태만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뒷굽이 10㎝를 넘는 하이힐,이른바 '킬힐(Kill Heel)'이 유행이다. 인터넷 쇼핑몰 G마켓이 상반기 히트상품을 조사한 결과 킬힐이 1위에 오른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쇼핑몰에서만 지난 6개월간 무려 100만여 켤레가 팔려나갔다. '아줌마들'까지 유행에 동참할 정도여서 구두가게는 킬힐을 얼마나 다양하게 갖췄는가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킬힐의 인기 여파로 남성 '키높이 구두'까지 덩달아 잘 팔린단다.
킬힐이 신기에 편한 신발은 아니다. 생긴 모양이야 경쾌해 보이지만 발에는 엄청난 부담을 준다. 신을 때 발 앞쪽에 몰리는 압력이 압력밥솥이 끓어 넘칠 때의 4배에 달한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킬힐이라는 이름도 패션쇼에서 신고 런웨이를 걷다가 넘어지는 모델들이 속출하면서 붙었다고 한다. 의료계에선 킬힐을 자주 신으면 무지외반증(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휘는 증세),척추측만증(허리가 휘는 증세)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행치고는 잔인한 편이다.
그런데도 멋쟁이들이 킬힐에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킬힐을 신으면 몸무게가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몸을 뒤로 젖혀야만 똑바로 설 수 있게 된다.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엉덩이를 바짝 당기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관능적인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다. 힐이 높아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는 데다 키가 커보이는 효과도 있다.
킬힐의 유행을 멋뿐만 아니라 여성 자아의 성장과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당당하고 적극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높아진 위상이 반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슈퍼모델 베로니카 웹이 "하이힐은 그것을 신은 여성을 존경의 대상으로 만든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저런 특징에도 불구하고 킬힐이 몸을 혹사하는 신발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일단 뒷굽이 5㎝ 이상이면 몸에 무리가 간다고 한다. 불가피하게 킬힐을 신더라도 1주일에 2회 이하,하루 2~3시간을 넘지 말라는 게 의사들의 충고다. 멋쟁이가 되려면 어느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지만 매력에 너무 집착하다가 발이나 허리가 뒤틀리는 사태만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